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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순흥 벽화 고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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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순흥 벽화 고분
Mural Tomb in Sunheung, Yeongju
영주 순흥 벽화 고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주 순흥 벽화 고분
영문명칭 Mural Tomb in Sunheung, Yeongju
한자 榮州 順興 壁畵 古墳
주소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 산29-1번지
지정번호 사적 제313호
지정일 1985년 11월 7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시대 신라
수량/면적 180,504㎡
웹사이트 영주 순흥 벽화 고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영주 순흥 벽화 고분은 삼국 시대 벽화 고분*으로, 널방과 출입문, 널방과 바깥을 연결하는 널길**로 이루어진 굴식 돌방무덤이다. 돌방을 덮은 봉분은 흙을 둥글게 쌓아 만들었고, 봉분 둘레에는 봉분을 보호하는 호석***을 돌렸다. 널방 벽은 안으로 경사지게 쌓아서 천장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좁아진 벽 위에는 2개의 판판한 돌을 놓아 천장을 만들었다. 널방의 네 벽면은 석회를 발랐고, 널방 바닥에는 시신을 모셔 두는 주검받침을 설치하였다. 주검받침은 깬 돌을 쌓아 만들었는데, 윗면과 서쪽 면에는 석회를 두껍게 발랐다.

그림은 천장을 제외한 널방의 네 벽면, 널길 좌우 벽면, 시상대(屍床臺) 옆면에 그려져 있다. 먹선만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먹선으로 윤곽을 잡은 다음 그 안에 붉은색, 노란색 등으로 색칠을 하여 그렸다. 동쪽 벽에는 새의 머리, 남쪽 벽에는 사람과 글씨, 북쪽 벽에는 3개의 산, 연꽃, 구름무늬, 서쪽 벽에는 나무, 집, 수문장(守門將)으로 보이는 힘이 센 사람을 그렸다.

순흥 벽화 고분은 도굴되었기 때문에 무덤의 연대를 알려 주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미중묘상인명(己未中墓像人名)”이라는 글씨를 통해 479년 또는 53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벽화 고분에는 많은 그림이 남아 있어, 삼국 시대의 회화, 종교관, 내세관, 고구려와 신라의 문화 교류 등을 알려 주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벽화 고분: 시신을 안치하는 무덤 속의 방인 널방 내부에 그림을 그려 장식한 무덤
  • 널길: 고분의 입구에서 시체를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 호석: 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

영문

Mural Tomb in Sunheung, Yeongju


영문 해설 내용

이 고분은 삼국시대인 5세기 후반-6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85년 도굴된 상태로 발견되어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지만, 내부 벽면이 수많은 벽화로 가득 채워져 있어 매우 귀중한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고분의 형태는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로 쌓아 만든 널방과, 널방과 바깥을 연결하는 널길, 널길 끝에 있는 출입구로 이루어져 있다. 널방 위에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들고, 봉분 아래쪽에는 흙이 흘러내리는 것을 막기 위해 돌을 둘렀다.

널방의 벽은 안쪽으로 경사지게 쌓았으며, 천장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 좁아진 벽 위에는 2개의 판판한 돌을 놓아 천장을 만들었다. 널방 바닥에는 깬돌을 쌓아 시신을 모셔 둘 주검받침을 설치하였다.

벽화는 천장을 제외한 널방의 네 벽면과 널길 좌우 벽면, 그리고 주검받침 옆면에 그려져 있다. 널방의 네 벽면은 석회가 발라져 있고, 그 위에 먹선만으로 그림을 그리거나 먹선으로 윤곽을 잡은 다음 그 안에 붉은색, 노란색 등으로 색칠을 하였다. 동쪽 벽에는 새의 머리, 남쪽 벽에는 사람과 글씨, 북쪽 벽에는 3개의 산, 연꽃, 구름무늬, 서쪽 벽에는 나무, 집, 수문장(守門將)으로 보이는 힘이 센 사람을 그렸다.

널길의 동·서쪽 벽면에도 그림이 있는데, 서벽엔 뱀을 손에 잡아 감고 있는 사나이의 모습이, 동벽에는 눈을 부릅뜬 힘 센 사람의 그림이 있다. 이것은 무덤의 시신을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그려진 것으로 해석된다.

벽화 고분이라고 해도 보통은 벽면 일부에 그림이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 고분과 같이 벽면 전체가 벽화로 가득 채워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러한 벽화들은 삼국시대의 회화와 당시의 내세관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