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수도리 김뢰진 가옥"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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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집은 김휘걸(1864~1937)이 19세기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기와집인 대문간채와 사랑채, 초가집인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 ||
+ | 안채는 온돌방 2개, 부엌, 봉당, 고방, 대청으로 이루어진 폐쇄적인 구조이다. | ||
+ | 이런 형태의 집은 주로 산간지방에서 많이 지어졌다. 집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눈이 많이 오거나 야생동물이 있는 곳에서 최적의 보호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통풍과 채광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붕의 양쪽 끝에 구멍을 냈다. 이와 같은 집들은 일반적으로 초가집으로 지어졌고, 지붕에 난 구멍은 까치둥지와 비슷한 모양을 하게 되어 '까치구멍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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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2일 (수) 08:00 판
영주수도리김뢰진가옥 Kim Roe-jin’s House in Sudo-ri, 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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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주수도리김뢰진가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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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Kim Roe-jin’s House in Sudo-ri, Yeongju |
한자 | 榮州水島里金賚鎭家屋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237번지 |
지정번호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18호 |
지정일 | 1999년 8월 9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2동 |
웹사이트 | 영주 수도리 김뢰진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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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김뢰진 가옥은 19세기에 김휘걸(金輝杰)이 지었다고 알려진 살림집이다. 김휘걸의 호를 따 만운 고택이라고도 한다.
안채에 방이 부족하여 일제 강점기인 1930-40년대에 지었다고 전하는 사랑채는 남성이 거처하면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다. 앞면 5칸, 옆면 1칸 규모이고, 평면이 ‘ㅡ’ 자 모양인 기와지붕 건물이다. 왼쪽부터 마구간, 부엌, 손님을 맞이하는 사랑방과 마루방이 있다.
여성이 생활하는 공간인 안채는 까치구멍집*으로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이고, 방을 앞뒤 2열로 배치한 겹집이다. 안채의 앞쪽에는 사랑방, 흙바닥으로 된 출입 공간인 봉당, 부엌이 있고, 뒤쪽에는 물건을 넣어 두는 고방, 마루, 안주인이 사용하는 안방이 있다. 다른 까치구멍집에는 마구간이 있는 자리에 사랑방을 만들고, 사랑방 앞쪽에 마루를 두어 개방된 느낌이 들도록 하였다.
이 가옥은 후대에 수리를 하여 겉모습은 조금 달라졌으나 내부의 각종 시설은 원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어서 조선 시대 후기 살림집의 변화 과정을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 까치구멍집: 지붕 용마루 양쪽에 까치둥지와 비슷한 모양의 구멍을 내어 공기가 잘 통하게 만든 집이다. 까치구멍집은 태백산맥 일대에 주로 분포하며 특히 경상북도 북부 지방에 많다. 폐쇄형 가옥으로, 대문만 닫으면 맹수의 공격을 막을 수 있고,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혀도 집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영문
Kim Roe-jin’s House in Sudo-ri, Yeongju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김휘걸(1864~1937)이 19세기에 지었다고 알려져 있다. 기와집인 대문간채와 사랑채, 초가집인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온돌방 2개, 부엌, 봉당, 고방, 대청으로 이루어진 폐쇄적인 구조이다.
이런 형태의 집은 주로 산간지방에서 많이 지어졌다. 집 안에서 모든 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눈이 많이 오거나 야생동물이 있는 곳에서 최적의 보호환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통풍과 채광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를 개선하기 위해 지붕의 양쪽 끝에 구멍을 냈다. 이와 같은 집들은 일반적으로 초가집으로 지어졌고, 지붕에 난 구멍은 까치둥지와 비슷한 모양을 하게 되어 '까치구멍집'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안채의 규모가 협소해 생활공간이 부족해지자 1930-40년대에 사랑채를 추가로 지었다. 왼쪽부터 마구간, 부엌, 사랑방, 마루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