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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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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흥사가 있는 곳은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흥녕선원이 있던 곳이다. 징효대사 절중(826-900)이 신라 말 고려 초에 형성된 한국 선종의 9개 산문 중 하나인 사자산문을 흥녕선원에서 개창하였고, 이때 사세가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891년 전쟁으로 사찰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944년에 다시 세워져 작은 사찰로 명맥이 유지되었다. 1902년 법흥사로 이름을 고쳤고, 1912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 중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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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이 사찰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한국의 다섯 사찰 중 하나이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가져와 양산 통도사, 평창 상원사, 인제 봉정암, 영월 흥녕선원에 모셨고,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통도사에 모셔진 진신사리를 나누어 정선 정암사에 모셨다.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진신사리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법당으로, 지금의 건물은 1939년에 고쳐 지었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하는 석분이 있고, 석분 뒤쪽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셔놓았다는 넣고 왔다는 돌널이 남아 있다. 진신사리가 있기 때문에 적멸보궁 안에 불상을 모시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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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법흥사에는 징효대사의 탑비(보물)와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유산), 주인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유산)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있다.
  
  

2024년 4월 16일 (화) 18:24 판


법흥사
대표명칭 법흥사
한자 法興寺
주소 강원 영월군 무릉도원면 무릉법흥로 1352 (법흥리)
웹사이트 사자산 법흥사 홈페이지.



해설문

국문

통일신라 말기 구산선문* 중 사자산문의 중심 도량인 흥녕선원의 옛터다. 자장율사가 세웠으며, 도윤국사와 징효국사 때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진성여왕 4년(891)에 전쟁으로 불에 타 없어졌고, 고려 혜종 1년(944)에 다시 세웠으나, 그 뒤 또다시 사라져 천 년 가까이 명맥만 이어 오다가 1902년 법흥사로 이름을 고쳤다.

이곳은 부처님의 유골인 진신사리를 모신 5대 적멸보궁 중 하나로 영월 흥녕사지 징효대사탑비(보물), 영월 징효국사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유산), 영월 법흥사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유산), 영월 법흥사 석분(도지정 유형 문화유산) 등이 있다.

현재는 적멸보궁을 비롯하여 대웅전, 무설전과 요사채 겸 공양실인 심우장 등이 남아 있다. 적멸보궁은 앞면 3칸, 옆면 1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1939년에 손질하여 고쳤으며, 법당 안에 불상을 봉안하지는 않았다. 적멸보궁 왼쪽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하는 석분이 있고 석분 뒤쪽에는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넣고 왔다는 돌널(돌로 만든 관이나 곽)이 남아 있다.


  • 구산선문: 통일신라 이후 불교가 크게 흥할 때, 승려들이 중국에서 달마의 선법(禪法)을 받아 와 그 문풍(門風)을 지켜 온 아홉 산문을 말한다. 실상산문, 가지산문, 사굴산문, 동리산문, 성주산문, 사자산문, 희양산문, 봉림산문, 수미산문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법흥사가 있는 곳은 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한 흥녕선원이 있던 곳이다. 징효대사 절중(826-900)이 신라 말 고려 초에 형성된 한국 선종의 9개 산문 중 하나인 사자산문을 흥녕선원에서 개창하였고, 이때 사세가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891년 전쟁으로 사찰 전체가 불에 타 없어졌고, 944년에 다시 세워져 작은 사찰로 명맥이 유지되었다. 1902년 법흥사로 이름을 고쳤고, 1912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930년 중건되었다.

특히 이 사찰은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한국의 다섯 사찰 중 하나이다. 자장율사는 당나라에서 진신사리를 가져와 양산 통도사, 평창 상원사, 인제 봉정암, 영월 흥녕선원에 모셨고,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통도사에 모셔진 진신사리를 나누어 정선 정암사에 모셨다. 법흥사의 적멸보궁은 진신사리에 예배하기 위해 세워진 법당으로, 지금의 건물은 1939년에 고쳐 지었다. 적멸보궁 뒤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곳이라고 전하는 석분이 있고, 석분 뒤쪽에는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셔놓았다는 넣고 왔다는 돌널이 남아 있다. 진신사리가 있기 때문에 적멸보궁 안에 불상을 모시지는 않았다.

이밖에도 법흥사에는 징효대사의 탑비(보물)와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유산), 주인을 알 수 없는 또 다른 부도(도지정 유형문화유산)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