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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금몽암은 보덕사의 부속 암자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조선 제6대 임금 단종(1441-1457, 재위 1452-1455)이 영월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후, 단종의 명복을 비는 법당이 되었다. 이후 금몽암은 임진왜란으로 훼손되었다가 1610년과 1662년에 보수되었다. 1698년에 단종이 복권되고 단종의 묘인 장릉을 지키는 사찰로 보덕사가 지정되자, 금몽암은 폐사되었다. 그 후 1745년 장릉을 관리하던 참봉 나삼이 금몽암의 옛터에 암자를 다시 세웠으며, 1792년에 수리되었다. 1806년 금몽암은 보덕사의 암자로 소속되었으며, 1978년 건물 내에 석조여래입상을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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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몽암은 보덕사의 부속 암자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재위 1452-1455)이 영월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후, 단종의 명복을 비는 법당이 되었다. 이후 금몽암은 임진왜란으로 훼손되었다가 1610년과 1662년에 보수되었다. 1698년에 단종이 복권되고 단종의 묘인 장릉을 지키는 사찰로 보덕사가 지정되자, 금몽암은 폐사되었다. 그 후 1745년 장릉을 관리하던 참봉 나삼이 금몽암의 옛터에 암자를 다시 세웠으며, 1792년에 수리되었다. 1806년 금몽암은 보덕사의 암자로 소속되었으며, 1978년 건물 내에 석조여래입상을 모셨다.  
  
  

2024년 4월 21일 (일) 13:25 판


금몽암
금몽암, 디지털영월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금몽암
한자 禁夢庵
주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보덕사길 112 (영흥리)
지정번호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5호
지정일 1984년 6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금몽암,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6대 임금인 단종이 궁궐에 있을 때, 이곳에 관한 꿈을 꾼 인연으로 터를 잡고 절을 지어 이름을 금몽암이라 하였으며, 단종의 원당(죽은 이의 명복을 빌던 법당)이 되었다.

임진왜란으로 훼손된 것을 광해군 2년(1610) 당시 영월 부사 김택룡이 건물을 보수하고 노릉암(魯陵庵)으로 고쳐 불러 오다가 현종 2년(1662)에 이르러 영월 부사 윤순거가 다시 수리하고 지덕암(旨德庵)이라 하였다.

숙종 24년(1698)에 단종이 복위되고 보덕사가 단종의 장릉을 지키는 원찰이 되자 이 암자는 폐사되었다. 그 후 영조 21년(1745) 장릉을 관리하던 나삼이 옛터에 암자를 다시 세우고 금몽암이라 하였으며, 1792년 수리된 기록이 남아 있다. 1806년 금몽암은 보덕사의 암자로 소속되었으며, 1978년 건물 내에 석조여래입상을 모셔 두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금몽암은 보덕사의 부속 암자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재위 1452-1455)이 영월에 유배되어 세상을 떠난 후, 단종의 명복을 비는 법당이 되었다. 이후 금몽암은 임진왜란으로 훼손되었다가 1610년과 1662년에 보수되었다. 1698년에 단종이 복권되고 단종의 묘인 장릉을 지키는 사찰로 보덕사가 지정되자, 금몽암은 폐사되었다. 그 후 1745년 장릉을 관리하던 참봉 나삼이 금몽암의 옛터에 암자를 다시 세웠으며, 1792년에 수리되었다. 1806년 금몽암은 보덕사의 암자로 소속되었으며, 1978년 건물 내에 석조여래입상을 모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