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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0년(1428) 김복항이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오나, 영월제영(寧越題詠)에 의하면 숙종 10년(1684)에 장정공 이무가 영월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자신의 재산을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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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0년(1428) 김복항이 처음 세웠다고 전하나, 『영월제영』에 따르면 숙종 10년(1684)에 장정공 이무가 영월 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자신의 재산을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는 기록도 전한다.
  
금강정의 규모는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정자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錦江亭)’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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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의 규모는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정과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퇴계 이황이 안동에서 춘천으로 가던 중 금강정에 들러 지은 것으로 보이는 「금강정」 이라는 시와 숙종 10년(1684)에는 우암 송시열이 금강정에 주위로 펼쳐지는 절경을 바라보며 쓴 『금강정기(錦江亭記)』 문헌기록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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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정과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퇴계 이황이 금강정에 들러 지은 듯한 ‘금강정’이라는 시와 숙종 10년(1684) 우암 송시열이 금강정 주위 절경을 바라보며 쓴 『금강정기』 문헌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금강정은 조선시대 유학자들의 방문과 기록이 이어진 곳이며, 금강정 주위에 민충사와 낙화암 등 단종 관련 유적이 자리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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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금강정은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방문과 기록이 이어졌으며, 주위에 민충사와 낙화암 등 단종 관련 유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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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2월 27일 (화) 13:37 판


금강정
금강정, 디지털영월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금강정
한자 錦江亭
주소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영흥리)
지정번호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4호
지정일 1984년 6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금강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세종 10년(1428) 김복항이 처음 세웠다고 전하나, 『영월제영』에 따르면 숙종 10년(1684)에 장정공 이무가 영월 군수로 있을 때 금강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하여 자신의 재산을 들여 정자를 짓고 금강정이라 하였다는 기록도 전한다.

금강정의 규모는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정자 안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친필인 ‘금강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금강정과 주변의 수려한 경관은 퇴계 이황이 금강정에 들러 지은 듯한 ‘금강정’이라는 시와 숙종 10년(1684) 우암 송시열이 금강정 주위 절경을 바라보며 쓴 『금강정기』 등 문헌 기록에서도 확인된다.

이처럼 금강정은 조선 시대 유학자들의 방문과 기록이 이어졌으며, 주위에 민충사와 낙화암 등 단종 관련 유적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