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양 조검 축천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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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조검 축천단비
Stele of Jo Geom
대표명칭 영양 조검 축천단비
영문명칭 Stele of Jo Geom
한자 英陽 趙儉 祝天壇碑
주소 경상북도 영양군 영양읍 상원리 302-3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556호
지정일 2009년 8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영양 조검 축천단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검 축천단비는 조검 선생이 죽은 후에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영남 북부 지역의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기념비이다. 조검은 효성이 지극하여 할머니를 정성으로 봉양하였다. 어느 날 할머니가 병이 들어 강어회(江魚膾)를 먹고 싶어 하였지만 때마침 겨울이라 돈을 가지고도 살 수가 없었다. 조검은 강을 따라 수십 리를 울면서 올라갔는데 까치가 모여 우는 곳에서 잉어(鯉魚)를 얻어 할머니의 병을 고치게 되었다. 그 후 마을 이름을 고쳐서 비리동(飛鯉洞)이라고 불렀으며, 조검은 효행이 알려져서 나라로부터 복호*의 혜택을 받았다.

조검은 임진왜란 때 스무 살의 나이로 의병장 곽재우를 도와 전쟁에 참가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워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기록되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남동생인 사월과 함께 집 뒤에 단을 쌓고 전쟁에서 이기고 임금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축원하였다. 이를 후세 사람들이 ‘축천단 충절’이라 일렀다.

축천의 단이 있던 자리에 1827년에 세운 비가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는데, 비명은 강고 유심춘의 글이고 비각(碑閣)의 상량문은 운산 이휘재의 글이다.

비각은 일제 강점기와 6.25사변을 거치면서 낡고 무너져 1980년대에 중수한 것이다.

  • 복호(復戶): 조선 시대에, 충신이나 효자, 군인 등 특정한 대상자에게 부역이나 조세를 면제하여 주던 일.
  • 무공신(宣武功臣): 조선 선조 37년(1604)에,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이순신, 권율 등 열여덟 무신(武臣)에게 내린 훈공.

  •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인물로서, 선조 37년(1604)의 선무공신(宣武功臣) 18인에 들지 못한 9,060명에게 선조 38년(1605)에 내린 훈공.
  •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선조 38년(1605)에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인물로서 선무공신(宣武功臣)에 들지 못한 9,060명에게 내린 훈공. 선무공신은 조선 선조 37년(1604)에 이순신, 권율 등 열여덟 무신(武臣)에게 내린 훈공.

영문

This stele honors the filial piety and loyalty of Jo Geom (1570-1644), a meritorious subject of the Joseon period. It was erected in 1827 by a group of Confucian scholars from the Gyeongsang-do area.

Jo Geom, who lost his parents at a young age, served his grandmother with his utmost sincerity. One day in winter, his grandmother was ill and wished to eat fresh, raw fish from the river. At first, Jo could not find any fish and lamented. But he did not give up and kept walking along the river for several kilometers. Eventually, he encountered a flock of crying magpies, where he at last discovered a carp. He brought the fish back to his grandmother and she was able to get well.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Jo joined a civilian army and was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4. During the Manchu invasions of 1636-1637, he and his younger brother Jo Im (1573-1644) could not participate in the war due to old age, and so instead, they built an altar in the backyard of his house to pray for a victory and the king's safety. The filial and loyal behaviors of Jo Geom were widely known, and as a result, he was exempted from tax and corvee labor.

This stele was erected on the site of the altar built by the Jo brothers, and the pavilion housing the stele was reconstructed in the 1980s.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공신인 조검(1570-1644)의 효행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영남지역 유림들이 1827년에 세운 비이다.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조검은 할머니를 지성으로 봉양했다. 어느 겨울날 할머니가 병이 들어 강어회(江魚膾)를 먹고 싶어 하였지만 구할 수가 없자, 조검은 강을 따라 수십 리를 울면서 올라갔다. 그런데 까치가 모여 우는 곳에서 잉어(鯉魚)를 얻어 할머니의 병을 고치게 되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으로 전쟁에 참가하였으며, 1604년에 공신으로 기록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는 나이가 너무 많아서 전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자, 남동생인 조임(1573-1644)과 함께 집 뒤에 단을 쌓고 전쟁에서 이기고 임금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하늘에 축원하였다. 이러한 효행과 충절이 알려져 조검은 부역과 조세를 면제받았다.

이 비는 형제가 세운 축천의 단이 있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비각은 1980년대에 중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