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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706280000 영덕 상의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3413706280000 영덕 상의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영덕 상의당
 
|대표명칭=영덕 상의당
|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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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Sanguidang Hall, Yeongdeok
 
|한자=盈德 尙儀堂
 
|한자=盈德 尙儀堂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원구길 30-1 (영해면)
 
|주소=경상북도 영덕군 원구길 30-1 (영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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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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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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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당은 조선 숙종(1674~1720 재위) 때 백훤(白暄)과 백돈(白暾) 형제가 선조인 상의당 백충언(尙儀堂 白忠彦)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헌종(1834∼1849 재위) 때에는 후손인 백기동(白基東)이 별당으로도 사용했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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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충언은 임진왜란 때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당시 피난하는 선조(1567∼1608 재위)를 보호하고 지킨 공로로 선무원종공신 2등에 봉해졌다.
====초고====
 
상의당은 조선 숙종대에 백훤(白暄)과 백돈(白暾) 형제가 선조인 백충언(白忠彦, 1538~1609, 호: 상의당)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헌종대에는 후손인 백기동(白基東)이 별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충언은 임진왜란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고 어가를 호위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
현재 상의당 건물은 고종 3년(1866)에 손보고 고쳤다. 대청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고,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다. 상의당을 다시 고칠 때 궁궐 목수가 건축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붕의 박공 부분이 고깔모자와 비슷해서 보기에 색다르다.
  
건물은 중수 당시에 궁궐 목수가 건축에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문틀의 맞춤이나 목재의 마름질에서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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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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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guidang Hall, Yeongdeok'''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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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상의당은 조선 숙종(1674~1720 재위) 대에 백훤(白暄)백돈(白暾) 형제가 선조인 백충언(白忠彦, 1538~1609, 호: 상의당)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헌종(1834∼1849 재위) 대에는 후손인 백기동(白基東)이 별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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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의당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백훤과 백돈 형제가 선조인 백충언(1538-1609, 호: 상의당)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무신이자 의병장이었던 백충언은 임진왜란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고, 당시 피난하는 선조(재위 1567-1608)를 호위한 공로로 공신에 책봉되었다. 헌종(재위 1834-1849) 때에는 후손인 백기동이 별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충언은 임진왜란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고, 당시 피난하는 선조(1567∼1608 재위)를 호위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
현재의 건물은 1866년에 보수한 것이며, 당시 궁궐 목수가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대청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고,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다. 지붕의 박공 부분이 고깔모자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점이 독특하다.
 
 
건물은 중수 당시에 궁궐 목수가 건축에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문틀의 맞춤이나 목재의 마름질에서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자문의견====
 
#분야별 자문위원1
 
#*지붕은 고깔모자의 형상을 보이며 기둥과 처마사이에 지붕곡이 수평에 가까운 경사를 보이는 점이 이채롭다.
 
#분야별 자문위원2
 
#*상의당은 조선 숙종(1674~1720) 때에 백훤(白暄)‧백돈(白暾) 형제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상의당 백충언(白忠彦, 1538~1609)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대청 상부의 상량문에 ‘병인 3월’이라는 기록이 있어 1866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크게 고치거나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상의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반의 ㄱ자형 평면을 한 팔작지붕 집이다. 대청 좌우에 방을 두고 전면에 퇴를 두었다. 창틀과 문틀을 연귀맞춤 기법으로 제작하고, 문살과 목재 표면을 정교하게 마름질하여 고급 자재와 기술로 지은 것이 확인된다.
 
#** 연귀맞춤: 두 부재가 직각으로 만나는 모서리 부분을 대각선 형태로 맞춤하는 기법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건물은 중수 당시에 궁궐 목수가 건축에 참여했다고 한다. 실제로 문틀의 맞춤이나 목재의 마름질에서 (기품있는 장인이)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2차 수정====
 
상의당은 조선 숙종(1674~1720 재위) 때에 백훤(白暄)과 백돈(白暾) 형제가 선조인 백충언(白忠彦, 1538~1609, 호: 상의당)을 기리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헌종(1834∼1849 재위) 때에는 후손인 백기동(白基東)이 별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충언은 임진왜란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고, 당시 피난하는 선조(1567∼1608 재위)를 호위한 공로로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866년에 중수한 것이다. 대청 좌우에 온돌방을 두고 전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중수 당시에 궁궐 목수가 건축에 참여했다고 하며, 실제로 문틀의 맞춤이나 목재의 마름질에서 기품있는 장인이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지붕의 박공 부분이 고깔모자와 비슷한 형상을 보이는 점이 이채롭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2020년 12월 4일 (금) 17:30 판


영덕 상의당
Sanguidang Hall, Yeongdeok
영덕 상의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덕 상의당
영문명칭 Sanguidang Hall, Yeongdeok
한자 盈德 尙儀堂
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원구길 30-1 (영해면)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8호
지정일 2014년 12월 18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주거시설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棟⁄51㎡
웹사이트 영덕 상의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상의당은 조선 숙종(1674~1720 재위) 때 백훤(白暄)과 백돈(白暾) 형제가 선조인 상의당 백충언(尙儀堂 白忠彦)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헌종(1834∼1849 재위) 때에는 후손인 백기동(白基東)이 별당으로도 사용했다.

백충언은 임진왜란 때 여러 전투에 참여하여 공을 세웠다. 당시 피난하는 선조(1567∼1608 재위)를 보호하고 지킨 공로로 선무원종공신 2등에 봉해졌다.

현재 상의당 건물은 고종 3년(1866)에 손보고 고쳤다. 대청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고,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다. 상의당을 다시 고칠 때 궁궐 목수가 건축에 참여했다고 한다. 지붕의 박공 부분이 고깔모자와 비슷해서 보기에 색다르다.

영문

Sanguidang Hall, Yeongdeok

영문 해설 내용

상의당은 조선 숙종(재위 1674-1720) 때 백훤과 백돈 형제가 선조인 백충언(1538-1609, 호: 상의당)을 기리기 위해 지었다. 무신이자 의병장이었던 백충언은 임진왜란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하였고, 당시 피난하는 선조(재위 1567-1608)를 호위한 공로로 공신에 책봉되었다. 헌종(재위 1834-1849) 때에는 후손인 백기동이 별당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의 건물은 1866년에 보수한 것이며, 당시 궁궐 목수가 보수 작업에 참여했다고 한다. 대청 왼쪽과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고, 앞면에는 툇마루가 있다. 지붕의 박공 부분이 고깔모자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점이 독특하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