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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이용찬, [https://blog.naver.com/yongchan62/221863876699 양혜공 김빈길의 묘역], 이용찬의 여행사진,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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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양혜공 김빈길의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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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襄惠公 金贇吉의 墓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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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부곡리 56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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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증: 사후 관직을 내리는 일
 
*추증: 사후 관직을 내리는 일
 
*시호: 왕과 왕비를 비롯해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에 따라 국왕에게 받은 이름
 
*시호: 왕과 왕비를 비롯해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에 따라 국왕에게 받은 이름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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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 of Kim Bin-gil'''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의 장군 김빈길(?-1405)의 묘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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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장군 김빈길(?-1405)의 묘이다.
 
 
김빈길은 낙안 출신으로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 1397년 의병을 일으키고 낙안에 토성(지금의 낙안 읍성)을 쌓았다. 그는 전라도 해안의 군사 요충지에 무관과 병선을 나누어 배치하여 백성을 지켰고, 왜구의 약탈로 무인도로 변하던 섬을 개간하여 수군에게 식량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말년에 가족들을 데리고 고창 오씨의 땅인 경방동(지금의 고창읍 신월리)으로 이주하였으며, 1405년 고창 흥덕 사진포에 왜구가 침입했을 때 늙은 몸을 이끌고 왜구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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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빈길은 낙안(지금의 순천 지역) 출신으로,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있던 1397년 의병을 일으켜 낙안에 토성(약 30년 후 낙안읍성으로 증축)을 쌓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또한 전라도 해안의 군사 요충지에 무관과 병선을 배치하여 백성을 지켰으며, 왜구의 약탈로 인해 무인도로 변해가던 섬을 개간하여 수군에게 식량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가족들과 함께 지금의 고창읍 신월리 지역으로 이주하였으며, 1405년 고창 사진포에 왜구가 침입했을 때 늙은 몸을 이끌고 왜구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묘비,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고, 인근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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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분 앞에는 상석, 묘비,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고, 인근에 김빈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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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낙안군은 김빈길 장군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마이뉴스, 09.9.2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4746 -> 김빈길 생애 등 확인 / 고창 이주 관련한 ‘사패지’ 언급 없음
 
*낙안군은 김빈길 장군으로부터 시작됐다, 오마이뉴스, 09.9.26.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4746 -> 김빈길 생애 등 확인 / 고창 이주 관련한 ‘사패지’ 언급 없음
 
*이용찬의 여행사진,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yongchan62/221863876699 -> 김빈길 관련 내용, 사진 출처
 
*이용찬의 여행사진,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yongchan62/221863876699 -> 김빈길 관련 내용, 사진 출처

2020년 9월 12일 (토) 00:36 판


양혜공 김빈길의 묘역
Tomb of Kim Bin-gil
이용찬, 양혜공 김빈길의 묘역, 이용찬의 여행사진, 네이버 블로그.
대표명칭 양혜공 김빈길의 묘역
영문명칭 Tomb of Kim Bin-gil
한자 襄惠公 金贇吉의 墓域
주소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부곡리 567-2
지정번호 고창군 향토문화유산 제8호



해설문

국문

이곳은 조선 전기에 활동했던 김빈길 장군의 묘역이다. 김빈길은(?~1405)은 전라남도 순천 낙안 태생으로, 호는 죽강이며 본관은 고성이다. 조선 전기인 1397년에 의병을 일으켜 낙안에 토성(지금의 낙안 읍성)을 쌓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또한 전라도 해안의 군사 요충지에 무관과 병선을 나누어 배치하여 왜구의 침입으로부터 백성을 지켰으며, 왜구의 약탈로 무인도로 변하던 섬을 개간하여 수군에게 식량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관직에서 물러난 김빈길은 고창의 고창 오씨 땅인 경방동(지금의 고창읍 신월리)을 사패지(왕이 하사한 토지)로 받아,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1405년 고창 흥덕 사진포에 왜구가 침입해 약탈과 살상을 일삼자 김빈길은 늙은 몸을 이끌고 왜구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에 조정에서는 우의정을 추증*하고 ‘양혜’라는 시호*를 내렸다.


  • 추증: 사후 관직을 내리는 일
  • 시호: 왕과 왕비를 비롯해 벼슬한 사람이나 학덕이 높은 선비들이 죽은 뒤에 그의 행적에 따라 국왕에게 받은 이름

영문

Tomb of Kim Bin-gil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장군 김빈길(?-1405)의 묘이다.

김빈길은 낙안(지금의 순천 지역) 출신으로, 잠시 벼슬에서 물러나있던 1397년 의병을 일으켜 낙안에 토성(약 30년 후 낙안읍성으로 증축)을 쌓고 왜구를 격퇴하였다. 또한 전라도 해안의 군사 요충지에 무관과 병선을 배치하여 백성을 지켰으며, 왜구의 약탈로 인해 무인도로 변해가던 섬을 개간하여 수군에게 식량을 제공하기도 하였다. 말년에 관직에서 물러난 이후, 가족들과 함께 지금의 고창읍 신월리 지역으로 이주하였으며, 1405년 고창 사진포에 왜구가 침입했을 때 늙은 몸을 이끌고 왜구와 싸우다 전사하였다.

봉분 앞에는 상석, 묘비, 문인석 1쌍이 세워져 있고, 인근에 김빈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