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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가을이면 부채 모양의 나뭇잎이 노란색으로 물든다.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가을이면 부채 모양의 나뭇잎이 노란색으로 물든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가 42m이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약 15.2m이다. 한국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높고 오래되었다. 나이가 많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약 350kg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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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사의 은행나무는 한국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높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의 나이는 약 1,100살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42m이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약 15.2m이다. 나이가 많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약 350kg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고 하여 ‘천왕목’이라고 불리며,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625-702)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었다고 하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에 은거하러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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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고 하여 ‘천왕목’이라고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625-702)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었다고 하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에 은거하러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한다.
  
 
을사조약 이후 용문사가 항일 의병의 근거지가 되자, 1907년 일본군이 불을 질러 사찰 전체가 전소되었지만 이 나무만은 타지 않고 살아남았다. 1919년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 한다.
 
을사조약 이후 용문사가 항일 의병의 근거지가 되자, 1907년 일본군이 불을 질러 사찰 전체가 전소되었지만 이 나무만은 타지 않고 살아남았다. 1919년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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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4일 (화) 09:39 판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Ginkgo Tree of Yongmunsa Temple, Yangpyeong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영문명칭 Ginkgo Tree of Yongmunsa Temple, Yangpyeong
한자 楊平 龍門寺 銀杏나무
주소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 626-1번지
지정번호 천연기념물 제30호
지정일 1962년 12월 7일
분류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종교
수량/면적 1주
웹사이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용문사 은행나무의 나이는 약 1,100살 이상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42m이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약 15.2m이다. 우리나라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높고 오래되었다. 나무줄기 아래쪽에 혹처럼 큰 돌기*가 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나이가 많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약 350kg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용문사 은행나무가 오래된 만큼 여러 전설이 전해진다. 신라의 고승인 의상 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었다고 하며, 신라의 마지막 태자였던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한다.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용문사 은행나무가 소리를 내어 그것을 알렸다고 전한다.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정미의병 때(1907)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으나 용문사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다. 오랜 세월 속에서도 불타지 않고 살아남아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 하여 ‘천왕목(天王木)’이라고 불린다.


  • 돌기(突起): 도드라져 나온 부분

영문

Ginkgo Tree of Yongmunsa Temple, Yangpyeong

Ginkgo (Ginkgo biloba L.) is a tree considered to be a living fossil because it has existed for 270 million years. As its foliage creates a wide shaded area, the ginkgo is typically planted along the road and at village entrances. In autumn, the fan-shaped leaves turn a bright yellow.

The ginkgo tree of Yongmunsa Temple is known to be the oldest and tallest ginkgo tree in Korea. It is presumed to be 1,100 years old and measures 42 m in height and 15.2 m in circumference at the base. Despite its age, the tree still bears 350 kg of fruit each year.

The tree is nicknamed Cheonwangmok, meaning "a guardian tree" because it has watched over the entrance of the temple for a millenium. According to a legend, when Uisang (625-702), an eminent monk of the Silla period (57 BCE-935 CE), placed his walking stick here, it took root and grew into this tree. Another says that a son of King Gyeongsun (r. 927-935), the last king of the Silla kingdom, planted this tree on his way to Geumgangsan Mountain to seclude himself in grief over the loss of his kingdom.

After the Japan-Korea Treaty of 1905, when Korea was forced to become a protectorate of Japan, Yongmunsa Temple became a center of the local anti-Japanese civilian army movement. In 1907, when the Japanese army set the temple on fire, the entire temple complex burned down except this tree. It is said that in 1919, when King Gojong (r. 1863-1907) died, one of its main branches broke off. It is also said the tree gives a signal by making sounds during times of national crisis.

영문 해설 내용

은행나무는 약 2억 7천만 년 전부터 지구에 살기 시작했으며,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린다. 넓은 그늘을 만들어서 마을 입구의 정자나무나 가로수로 많이 심는다. 가을이면 부채 모양의 나뭇잎이 노란색으로 물든다.

용문사의 은행나무는 한국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가장 높고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의 나이는 약 1,100살 이상 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가 42m이고, 뿌리 부분의 둘레는 약 15.2m이다. 나이가 많은 나무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약 350kg 정도의 열매를 맺는다.

이 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용문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고 하여 ‘천왕목’이라고 불린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625-702)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았더니 뿌리를 내려 나무가 되었다고 하며,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재위 927-935)의 아들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 금강산에 은거하러 가는 길에 심었다고도 한다.

을사조약 이후 용문사가 항일 의병의 근거지가 되자, 1907년 일본군이 불을 질러 사찰 전체가 전소되었지만 이 나무만은 타지 않고 살아남았다. 1919년 조선 고종(재위 1863-1907)이 세상을 떠났을 때에는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고 한다. 또한 나라에 재앙이 있으면 이 나무가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