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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신복리 강맹경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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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신복리 강맹경 묘역
양평 신복리 강맹경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양평 신복리 강맹경 묘역
한자 楊平 新福里 姜孟卿 墓域
주소 경기 양평군 옥천면 신복리 산301번지
지정번호 경기도 기념물 제154호
지정일 1994년 12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기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양평 신복리 강맹경 묘역,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전기 문신인 강맹경(1410~1461)의 묘이다. 부인인 파평 윤씨와 함께 묻혀 있다. 무덤 앞에 돌을 쌓아 2단 계단식으로 만들었다. 무덤 앞 제사상인 상석(床石)은 하나의 돌로 되어 있다. 돌의 아랫부분을 안쪽으로 깎아 받침으로 만들었는데 이는 매우 특색 있는 표현이다.

무덤 앞에 불을 밝힐 수 있도록 세워진 장명등은 사각뿔 모양의 지붕 형태(사모지붕)이다. 문인석은 두 손을 소매에 넣어 모으고 있는 모습이다. 입과 턱 부분을 앞으로 내밀고 눈 등은 선으로 표현하였다. 이러한 형태는 조선 전기 문인석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인물의 업적과 생애를 기록한 신도비는 조선 세조 8년(1462)에 당대 문장가인 신숙주가 글을 쓰고, 강맹경의 사촌이었던 강희안이 글씨를 새겼다. 강희안의 글씨가 많이 남아 있지 않아 서예사적으로 의미 깊은 자료이다. 비의 글씨는 닳아 없어져 잘 보이지 않는다.

강맹경은 조선 세종 10년(1429)에 과거 시험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조선 세조가 왕이 되는 것(계유정난)을 도와 좌익공신 2등에 올랐고, 이후 영의정까지 지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전기 문신인 강맹경(1410~1461)의 묘이다.

강맹경은 1429년 과거에 급제했으며,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워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묘는 부인 파평 윤씨와의 합장묘인데, 중간이 이어진 쌍분 형태로 조성되어 있으며, 왼쪽이 강맹경의 묘이다.

봉문 앞에는 무덤 주인을 알리는 묘표 2기와 상석 2기가 각각 자리하고 있고, 상석 앞에 있는 장명등을 기준으로 좌우에 문인석 1쌍이 있다.

상석은 아랫부분을 안쪽으로 깎아 받침으로 만든 특이한 형태이며, 문인석은 두 손을 소매에 넣어 모은 모습으로 조선 전기 사대부 묘의 문인석에서 나타나는 특징을 보여준다.

묘역 동쪽에 있는 비각에는 1462년에 세워진 신도비가 있다. 신숙주(1417~1475)가 비문을 지었고 강맹경의 사촌인 강희안(1417-1464)이 글씨를 썼는데,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렵다.

아래쪽에 있는 봉분과 석물들은 아들인 강윤범(1429-1494)의 것이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