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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e of Master Honggak at Seollimwon Temple Site, Yangyang'''
 
'''Stele of Master Honggak at Seollimwon Temple Site, Yangyang'''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Master Honggak (814-88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Originally, only the pedestal and capstone were found intact at this temple site, while the body stone was found in fragments. In 2008, the stele was reassembled with a newly made body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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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Master Honggak (814-88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Originally, only the pedestal and capstone were found intact at this temple site, while the body stone was found in fragments. In 2008, the stele was reassembled with the newly made body stone.
  
Born in Silla’s capital, today’s Gyeongju, Honggak is said to have mastered history and Confucian texts when he was young. After he became a monk in 830, he traveled Buddhist temples and sacred mountains across the country to visit and listen to esteemed Buddhist patriarchs. It is said that he stayed at a temple named Eokseongsa in Seoraksan Mountain and oversaw a large-scale expansion of the temple. Among some historians, there is an assumption that Seollimwon Temple Site is the location of Eokseong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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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n in Silla’s capital, today’s Gyeongju, Honggak is said to have mastered the fields of history and Confucian texts when he was young. After he became a monk in 830, he traveled Buddhist temples and sacred mountains across the country to visit and listen to esteemed Buddhist patriarchs. It is said that he stayed at a temple named Eokseongsa in Seoraksan Mountain and oversaw a large-scale expansion of the temple. It is presumed by some historians that Seollimwon Temple Site is the location of Eokseongsa Temple.  
  
His stele is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in 886. At the center of the capstone is a square bearing the name “Stele of Master Honggak,” which is surrounded with dragons and cloud desig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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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ele is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in 886. At the center of the capstone is a square bearing the name “Stele of Master Honggak,” which is surrounded by dragons and cloud designs.  
  
The original body stone fragments are now housed in Chuncheon National Museum. The characters carved on the stele are copies of calligraphy by Wang Xizhi (303-361), a renowned Chinese calligrap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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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riginal body stone fragments are now housed at Chuncheon National Museum. The characters carved on the stele are copies of calligraphy by Wang Xizhi (303-361), a renowned Chinese calligrapher.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홍각선사(814-88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래 귀부와 머릿돌만 온전히 남아 있고 몸체는 파편만 발견되었는데, 2008년에 몸돌을 다시 만들어 현재의 모습으로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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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홍각선사(814-88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래 귀부와 머릿돌만 온전히 남아있고 몸체는 파편만 발견되었는데, 2008년에 몸돌을 다시 만들어 현재의 모습으로 세웠다.  
  
 
홍각선사는 당시 신라의 도읍인 경주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이미 경서와 사서에 통달했다고 한다. 830년 출가한 이후에는 전국의 여러 선림과 영악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찾았다. 설악산에 있던 억성사라는 절에 주석하면서 절을 대대적으로 중창했다고 하며, 선림원지가 바로 억성사가 있던 곳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홍각선사는 당시 신라의 도읍인 경주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이미 경서와 사서에 통달했다고 한다. 830년 출가한 이후에는 전국의 여러 선림과 영악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찾았다. 설악산에 있던 억성사라는 절에 주석하면서 절을 대대적으로 중창했다고 하며, 선림원지가 바로 억성사가 있던 곳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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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몸돌 파편은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있다. 몸돌에 새겨진 비문은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긴 것이다.  
 
원래의 몸돌 파편은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있다. 몸돌에 새겨진 비문은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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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양양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_비신.jpg | 비신 조각(국립춘천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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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양양선림원지홍각선사탑비_귀부이수.jpg | 복원 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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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1일 (목) 03:41 기준 최신판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Stele of Master Honggak at Seollimwon Temple Site, Yangyang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영문명칭 Stele of Master Honggak at Seollimwon Temple Site, Yangyang
한자 襄陽 禪林院址 弘覺禪師塔碑
주소 강원도 양양군 서면 황이리 산89번지
지정번호 보물 제446호
지정일 1966년 9월 2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양양 선림원지 홍각선사탑비는 홍각선사의 공로를 기리기 위한 탑비로, 통일 신라 정강왕 원년(886)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아 있는 비석의 파편과 『대동금석서大東金石書』에 따르면, 홍각선사는 경서를 잘 알고 수양에 힘써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탑비는 비석 받침인 거북 모양의 귀부(龜趺)와 비문을 새기는 비석의 몸체, 그 위에 얹는 비석의 머릿돌로 구성된다. 이 탑비는 귀부와 머릿돌만 온전히 남아 있고 몸체는 파편만 남아 있었는데, 2008년에 몸체를 복원했다. 원래 몸체의 파편은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있으며 파편에는 운철이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긴 비문 일부가 남아 있다. 이 비문은 신라 후기에 왕희지의 글씨가 보급되었음을 보여 주는 좋은 자료이다.

받침의 거북은 등에 육각형의 무늬가 있는데, 머리는 거북 대신 용이 목을 꼿꼿이 세운 모습으로 바꾸어 조각했다. 등에 붙어 있는 네모난 돌은 몸체를 세우는 자리로 연꽃무늬와 구름무늬가 새겨 있다. 머릿돌에는 전체적으로 구름과 용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고, 중앙에는 비의 주인공이 홍각선사임을 밝히는 글씨가 있다.


영문

Stele of Master Honggak at Seollimwon Temple Site, Yangyang

This stele was erected to honor the life and achievements of Master Honggak (814-88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Originally, only the pedestal and capstone were found intact at this temple site, while the body stone was found in fragments. In 2008, the stele was reassembled with the newly made body stone.

Born in Silla’s capital, today’s Gyeongju, Honggak is said to have mastered the fields of history and Confucian texts when he was young. After he became a monk in 830, he traveled Buddhist temples and sacred mountains across the country to visit and listen to esteemed Buddhist patriarchs. It is said that he stayed at a temple named Eokseongsa in Seoraksan Mountain and oversaw a large-scale expansion of the temple. It is presumed by some historians that Seollimwon Temple Site is the location of Eokseongsa Temple.

The stele is presumed to have been erected in 886. At the center of the capstone is a square bearing the name “Stele of Master Honggak,” which is surrounded by dragons and cloud designs.

The original body stone fragments are now housed at Chuncheon National Museum. The characters carved on the stele are copies of calligraphy by Wang Xizhi (303-361), a renowned Chinese calligrapher.

영문 해설 내용

이 비는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홍각선사(814-880)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탑비이다. 원래 귀부와 머릿돌만 온전히 남아있고 몸체는 파편만 발견되었는데, 2008년에 몸돌을 다시 만들어 현재의 모습으로 세웠다.

홍각선사는 당시 신라의 도읍인 경주에서 태어났고, 어린 시절 이미 경서와 사서에 통달했다고 한다. 830년 출가한 이후에는 전국의 여러 선림과 영악을 두루 다니며 선지식을 찾았다. 설악산에 있던 억성사라는 절에 주석하면서 절을 대대적으로 중창했다고 하며, 선림원지가 바로 억성사가 있던 곳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홍각선사의 탑비는 886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머릿돌의 중앙 사각형에는 ‘홍각선사비명’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으며, 주변에는 구름과 용의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원래의 몸돌 파편은 현재 국립춘천박물관에 있다. 몸돌에 새겨진 비문은 왕희지의 글씨를 모아 새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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