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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청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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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8월 5일 (월) 16:31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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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청문당
"안산 청문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산 청문당
한자 安山 淸聞堂
주소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청곡길 77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94호
지정일 2000년 4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곽
웹사이트 "안산 청문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진주 유씨 16세손 유시회(柳時會,1562~1635)가 처음 지었다고 전하는 가옥으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새로 건립한 것이다. 유시회의 조카인 유적이 선조의 부마로 정해진 후 아버지 유시행의 묘를 이곳 부곡동 새터에 정하면서 정착하여 살기 시작했다. 이후 진주 유씨는 임금이 하사한 넓은 사패지와 안산 바닷가의 어염권을 기반으로 이곳에 대대로 살아오면서 많은 인물들을 배출하였고, 조선 중기에는 기호남인(畿湖南人) 3대 가문의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또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청문당은 수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어 기호남인들의 학문과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부곡마을 안쪽의 낮은 경사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는 청문당은 넓은 앞마당에 면하여 뒷날개를 가진 ㄷ자형 사랑채가 있고 그 뒤로 ㄱ자형 안채와 ㅡ자형 아래채가 안마당을 둘러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트인 ㅁ자형의 구조이다. 안채 동북쪽에는 사당이 있고, 뒤뜰에는 화단이 조성되어 있다. 집 앞에는 연못이 있었으며, 연못 동쪽에는 바깥사랑채에 해당하는 연당, 서쪽에 현정, 북쪽에 느티나무와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이 가옥은 경기 지역의 민가와 사대부가의 형식이 절충된 살림집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 사패지: 국가나 왕실에 공을 세운 신하에게 특별히 하사하는 토지.
  • 어염권: 물고기를 잡고 소금을 만들 수 있는 권리.
  • 연당: 연꽃을 구경하기 위하여 연못가에 지은 정자.
  • 현정: 검은 정자.

영문

Cheongmundang House, Ansan

This house is said to have been built by Yu Si-hoe (1562-1635), a member of the Jinju Yu Clan.

Yu Si-hoe originally lived in the Goesan, Chungcheongbuk-do area. In 1606, the same year in which his nephew Yu Jeok was selected to marry a daughter of King Seonjo (r. 1567-1608), Si-hoe's brother and the father of Jeok, Yu Si-haeng, died. The king ordered his tomb be built in the Ansan area. A large amount of land and exclusive rights for fishing and salt farming were also bestowed by the royal court, allowing the Yu family to settle here and grow into a prestigious local family. In particular, Cheongmundang House had a tremendous number of books and documents, creating a center for academic and artistic activities among local scholars.

This house currently consists of a women’s quarters, men’s quarters, auxiliary quarters, and shrine. It is said that there was originally a pond in front of the house and pavilions and a well next to the pond.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진주유씨 가문의 유시회(1562-1635)가 처음 지었다고 전해진다.

유시회는 원래 충청북도 괴산에 살고 있었다. 조카 유적이 선조(재위 1567-1608)의 부마로 정해진 후, 유적의 아버지이자 유시회의 형제인 유시행이 세상을 뜨자, 선조의 명에 따라 현재의 안산 지역에 묘를 정하였다. 이후 유시회와 유적 가문의 사람들은 안산 지역에 정착하였고, 나라에서 내린 토지와 안산 바닷가의 어염권을 기반으로 이 지역의 유력 가문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특히 청문당은 수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어, 이 지역 학자들의 학문적, 예술적 중심지가 되었다.

현재 청문당은 안채, 사랑채, 아래채,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는 집 앞에 연못이 있었고, 연못 옆에는 정자와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