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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양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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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월 30일 (목) 14:09 판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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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양진당
Yangjindang House in Hahoe, Andong
"양진당", 안동하회마을.
대표명칭 안동 하회 양진당
영문명칭 Yangjindang House in Hahoe, Andong
한자 安東 河回 養眞堂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4
지정번호 보물 제306호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안동 하회 양진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집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 풍산에 살던 류종혜 柳從惠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기에 유서가 깊다. 15세기 무렵에 지은 후 임진왜란 때 화재를 겪기도 하였고, 여러 대에 걸쳐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대종택답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문중의 모임을 이 곳 사랑채에서 가진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풍산 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 柳泳 1687~1761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입암고택 立巖古宅 ’은 류운룡의 아버지인 류중영 柳仲郢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수정 국문

양진당은 15세기 무렵에 지은 풍산류씨 대종택이다. 풍산에 살던 류종혜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며 조선 중기 대유학자 류운룡(1539~1601)의 종가집이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좋은 땅으로 꼽히는 곳에 자리잡았다. 임진왜란 때 화재를 겪기도 하였고, 여러 대에 걸쳐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이어져 있고, 사랑채 뒤편에 사당이 있다. 사랑채는 문중 행사가 있을 때는 방문을 들어올려 대청을 확장할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는 제사가 있을 때 제청으로 사용했고, 평상시에는 손님을 접대하거나 문중 회의를 하는 곳이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최초로 풍산류씨 족보를 완성한 류영(1687~1761)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의 글씨는 조선 중기 이름난 서예가인 한석봉의 글씨이다. 또 ‘입암고택’이라는 다른 현판은 류운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 류중영(1515-1573)
  • 류운룡(1539-1601)
  • 류영(1687-1761) - 류운룡의 6대손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