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회 양진당
안동 하회 양진당 Yangjindang House in Hahoe, Ando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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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안동 하회 양진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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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Yangjindang House in Hahoe, Andong |
한자 | 安東 河回 養眞堂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724 |
지정번호 | 보물 제306호 |
지정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안동 하회 양진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기존 국문
이 집은 풍산류씨 대종택으로, 풍산에 살던 류종혜 柳從惠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기에 유서가 깊다. 15세기 무렵에 지은 후 임진왜란 때 화재를 겪기도 하였고, 여러 대에 걸쳐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대종택답게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며, 문중의 모임을 이 곳 사랑채에서 가진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풍산 류씨 족보를 최초로 완성한 류영 柳泳 1687~1761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사랑채에 걸려 있는 현판-‘입암고택 立巖古宅 ’은 류운룡의 아버지인 류중영 柳仲郢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수정 국문
양진당은 15세기 무렵에 지은 풍산류씨 대종택이다. 풍산에 살던 류종혜가 하회마을에 들어와 최초로 지은 집이며 조선 중기 대유학자 류운룡(1539~1601)의 종가집이다. 하회마을에서 가장 좋은 땅으로 꼽히는 곳에 자리잡았다. 임진왜란 때 화재를 겪기도 하였고, 여러 대에 걸쳐 지어진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이어져 있고, 사랑채 뒤편에 사당이 있다. 사랑채는 문중 행사가 있을 때는 방문을 들어올려 대청을 확장할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는 제사가 있을 때 제청으로 사용했고, 평상시에는 손님을 접대하거나 문중 회의를 하는 곳이다.
‘양진당’이라는 이름은 최초로 풍산류씨 족보를 완성한 류영(1687~1761)의 호에서 따온 것이며, 사랑채에 걸려있는 현판의 글씨는 조선 중기 이름난 서예가인 한석봉의 글씨이다. 또 ‘입암고택’이라는 다른 현판은 류운룡의 아버지인 류중영의 호에서 따온 것이다.
- 류중영(1515-1573)
- 류운룡(1539-1601)
- 류영(1687-1761) - 류운룡의 6대손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
- "안동 하회 양진당 정밀실측 배치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