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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외담을 세운 곳은 중문 앞.
 
* 내외담을 세운 곳은 중문 앞.
 
** 대문채를 두지 않고 길을 따라 쌓은 담장 가운데 트임대문을 내어 출입하게 하였다. 대문이 없기 때문에 노출되기 쉬운 안채를 보호하기 위하여 안채 출입 통로인 중문간 앞쪽에 중문간 폭만큼의 짧은 차면담을 두고 있다. - "[http://andong.grandculture.net/Contents?local=andong&dataType=01&contents_id=GC02400978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 대문채를 두지 않고 길을 따라 쌓은 담장 가운데 트임대문을 내어 출입하게 하였다. 대문이 없기 때문에 노출되기 쉬운 안채를 보호하기 위하여 안채 출입 통로인 중문간 앞쪽에 중문간 폭만큼의 짧은 차면담을 두고 있다. - "[http://andong.grandculture.net/Contents?local=andong&dataType=01&contents_id=GC02400978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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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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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오당은 류성룡의 증손자 류만하(1624~1711)가 충효당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그의 아들 류후장(1650~1706)이 증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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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대문채를 두지 않고 길을 따라 쌓은 담장 가운데 트임대문을 내어 출입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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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안채 출입 통로인 중문간 앞쪽에 중문간 폭만큼의 짧은 담을 세웠는데, 이것은 바깥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안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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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채에는 현판 두 개가 걸려 있다. 이 집의 이름인 ‘양오당’은 ‘맹자’에서 따온 말로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방문 위에 걸린 현판 ‘주일재’는 류후장의 호를 사랑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2020년 2월 13일 (목) 15:10 판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
Yangodang House in Hahoe, Andong
"양오당", 안동하회마을.
대표명칭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
영문명칭 Yangodang House in Hahoe, Andong
한자 安東 河回마을 養吾堂 古宅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남촌길 66 (하회리)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91호
지정일 1979년 1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필지/1,702㎡
웹사이트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집은 서애 西厓 류성룡 柳成龍 의 증손인 부호군副護軍 류만하 柳萬河 1624~1711가 충효당忠孝堂 종택宗宅에서 분가하면서 지은 집으로, 그의 아들 주일재主一齋 류후장 柳後章 1650~1706 이 증축하였다. 이 집은 사랑채, 문간채, 안채 일각문과 방앗간채가 마주하고 사당祠堂이 있는 전형적인 전통가옥이다. 대문 앞 안팎을 가리는 아담한 내외담은 옛사람들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 집의 규모와 형식은 대표적인 양반가옥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수정 국문

양오당은 류만하(1624~1711)가 충효당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그의 아들 류후장(1650~1706)이 증축하였다.

류만하는 조선 중기 때의 문신으로 하회를 대표하는 이름난 재상인 류성룡의 증손자이다.

이 집은 사랑채와 안채, 대문간과 곳간채를 두고, 동쪽 바깥에 사당을 둔 전형적인 상류층 가옥이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는 담장을 세워 사랑손님과 안채 여성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하였다. 이는 남녀의 공간을 구별하였던 조선 시대의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사랑채에는 현판 두 개가 걸려 있다. 이 집의 이름인 ‘양오당’은 ‘맹자’에서 따온 말로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방문 위에 걸린 현판 ‘주일재’는 류후장의 호를 사랑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 류만하(1624~1711): 류성룡의 셋째 증손자.
  • 내외담을 세운 곳은 중문 앞.
    • 대문채를 두지 않고 길을 따라 쌓은 담장 가운데 트임대문을 내어 출입하게 하였다. 대문이 없기 때문에 노출되기 쉬운 안채를 보호하기 위하여 안채 출입 통로인 중문간 앞쪽에 중문간 폭만큼의 짧은 차면담을 두고 있다. - "안동 하회마을 양오당 고택", 디지털안동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김현

양오당은 류성룡의 증손자 류만하(1624~1711)가 충효당 종택에서 분가하면서 지은 집이다. 그의 아들 류후장(1650~1706)이 증축하였다.

이 집은 대문채를 두지 않고 길을 따라 쌓은 담장 가운데 트임대문을 내어 출입하게 하였다. 또 안채 출입 통로인 중문간 앞쪽에 중문간 폭만큼의 짧은 담을 세웠는데, 이것은 바깥 사람의 시선으로부터 안채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사랑채에는 현판 두 개가 걸려 있다. 이 집의 이름인 ‘양오당’은 ‘맹자’에서 따온 말로 ‘나의 호연지기를 잘 기른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방문 위에 걸린 현판 ‘주일재’는 류후장의 호를 사랑채 이름으로 삼은 것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