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하리동 삼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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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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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4m이다. 이 일대는 절터일 가능성도 있으나, 유구는 모두 묻혀 있는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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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은 부처의 유골이나 유품 등을 모셔 두고 공양하기 위해 높게 만든 것이다. 본래 부처의 사리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높이 쌓은 무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서는 부처의 유골이 들어 있지 않아도 특별한 장소를 나타내거나 부처의 덕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도 탑이라고 한다.
  
탑은 기단부가 2중(二重) 기단이라 생각되며 상층기단 덮개돌 이상만 노출되어 있다. 덮개돌 상면에는 2단의 몸돌석 받침을 나타냈고, 초층 몸돌과 2층 몸돌은 2매석으로 모서리 기둥[隅柱]을 새겼다. 초층 지붕돌 받침은 4단, 2층과 3층 지붕돌 받침은 3단으로 하였으나, 2층과 3층의 지붕돌 층급받침 형태의 1단 받침을 조성하여 외견상 지붕돌 받침이 4단으로 보이게 한 것이 특이하다. 이와같이 층급 받침의 일부를 신석(身石)에 새겨 맞춘 예는 극히 드물다. 탑 아래 밭에는 노반석(露盤石)으로 추정되는 돌이 떨어져 있다. 석탑의 구조로 보아 이 지방 특유의 조성양식을 갖추고 있어 석탑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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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마을에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높이는 약 4m 정도로 바닥돌, 몸돌,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장식은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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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은 서남쪽으로 약간 기울고 바닥돌은 땅속에 묻혀 있었으나, 2005년 해체하고 복원하면서 땅속에 있던 바닥돌이 드러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층과 2층의 몸돌은 돌을 2단으로 쌓아 만들었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돋을새김*하였다. 1층 몸돌의 한 면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공간이 있다는 의미로 문짝 모양을 새겼다.  
====초고====
 
석탑은 2중의 바닥돌에 3층의 몸돌을 올린 고려시대 석탑으로 추정된다. 석탑의 높이는 5.8m 정도이며, 바닥돌과 몸돌, 머리장식 중 가장 위에 있는 머리장식은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는다. 주위 민가에 머리장식 중 일부인 수인(水烟)과 복발(覆鉢)이 보관되어 있다.(※ 확인 예정)
 
  
2005년 해체 복원 전에 석탑은 서남쪽으로 약간 기울고, 바닥돌은 땅 속에 묻혀 있었으나 복원을 통해 바로잡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층과 2층의 몸돌은 2장의 돌을 쌓아 제작했으며, 3층 몸돌은 1장으로 조성하였다. 각 층 몸돌의 모퉁이에는 모서리 기둥(우주 隅柱)을 돋을새김 하였다. 1층 몸돌 남면에는 목탑의 모습을 본 뜬 문짝 모양(문비형 門扉形)을 새겼다. 이곳에서 700m 떨어진 곳에 ‘안동 하리동 모전삼층석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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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이 있는 하리동은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오래전 마을과 논밭이 들어서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700여 m 떨어진 곳에는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안동 하리동 모전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이 있다.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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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돋을새김: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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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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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2020년 9월 24일 (목) 08:06 판

안동 하리동 삼층석탑
안동 하리동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하리동 삼층석탑
한자 安東 下里洞 三層石塔
주소 경북 안동시 풍산읍 중마길 18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8호
지정일 1979년 1월 25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안동 하리동 삼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탑은 부처의 유골이나 유품 등을 모셔 두고 공양하기 위해 높게 만든 것이다. 본래 부처의 사리를 묻고 그 위에 돌이나 흙을 높이 쌓은 무덤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후세에 이르러서는 부처의 유골이 들어 있지 않아도 특별한 장소를 나타내거나 부처의 덕을 추모하고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도 탑이라고 한다.

하리마을에 있는 삼층석탑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높이는 약 4m 정도로 바닥돌, 몸돌,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장식은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석탑은 서남쪽으로 약간 기울고 바닥돌은 땅속에 묻혀 있었으나, 2005년 해체하고 복원하면서 땅속에 있던 바닥돌이 드러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층과 2층의 몸돌은 돌을 2단으로 쌓아 만들었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돋을새김*하였다. 1층 몸돌의 한 면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공간이 있다는 의미로 문짝 모양을 새겼다.

탑이 있는 하리동은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오래전 마을과 논밭이 들어서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700여 m 떨어진 곳에는 고려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안동 하리동 모전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이 있다.


  • 돋을새김: 조각에서,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하리마을에 있는 이 석탑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약 4m 정도이며, 바닥돌, 몸돌, 지붕돌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장식은 파손되어 남아 있지 않다.

석탑은 서남쪽으로 약간 기울고 바닥돌은 땅속에 묻혀 있었으나, 2005년 해체·복원을 통해 바로잡아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1층과 2층의 몸돌은 돌을 2단으로 쌓아 만들었고,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돋을새김하였다. 1층 몸돌의 한 면에는 부처의 사리를 모신 공간이 있다는 의미로 문짝 모양을 새겼다.

탑이 있는 이곳은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오래전 마을과 논밭이 들어서서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700여 m 떨어진 곳에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모전삼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07호)이 하나 더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