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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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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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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2016) ===
 
탁순창(卓順昌)이 고향에 내려와 조선 숙종(肅宗) 25년(1699)에 지었다. 여기에는 그의 6대조와 7대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정문과 강당인 추원당(追遠堂) 그리고 사당인 세덕사(世德祠) 등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탁순창(卓順昌)이 고향에 내려와 조선 숙종(肅宗) 25년(1699)에 지었다. 여기에는 그의 6대조와 7대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정문과 강당인 추원당(追遠堂) 그리고 사당인 세덕사(世德祠) 등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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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 해설문에 오류가 있음. “6대조와 5대조”로 수정해야 함.
 
* 국문 해설문에 오류가 있음. “6대조와 5대조”로 수정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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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국문(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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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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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사는 임진왜란 때 훈련대장을 역임한 탁순창(卓順昌)이 전쟁이 끝난 후 안동으로 내려와 조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숙종 25년(1699)에 지은 사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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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탁순창의 6대조 탁광무(卓光茂, 1330~1410)와 그의 아들 탁신(卓愼, 1367~1426)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탁광무는 고려 충혜왕 1년(1331) 과거에 급제한 후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들과 교유했고, 탁신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벼슬길에 오른 뒤 세종대까지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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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과 강당, 사당인 세덕사까지 3동의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어졌으며, 매년 3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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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당의 배면과 세덕사의 전면에는 나무 판자로 된 문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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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원당에는 ‘오계서당’이라 적힌 현판이 함께 걸려있는데, 이 서당에 관련한 이야기는 검색되지 않으며, 수몰 이전 원래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도 검색되지 않음 -> 확인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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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광무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안동으로 내려온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항목 내용 참조), 것은 처가가 안동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므로 확인 필요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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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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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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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mplex is composed of a main gate, a lecture hall named Chuwondang, and the shrine. As the shrine is located on a hilly slope, a set of stairway was installed in front of the building.  
 
The complex is composed of a main gate, a lecture hall named Chuwondang, and the shrine. As the shrine is located on a hilly slope, a set of stairway was installed in front of the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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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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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세덕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69 -> 건물은 정문을 비롯하여 강당인 추원당(追遠堂)과 사당인 세덕사 등 모두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원당은 민도리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이며, 가운데 마루를 깔았고, 좌우 툇간에 방을 들였다. 5량가로 도리의 단면은 8각이다. 고종 당시 서원 훼철령이 내려졌을 때 향리들이 기둥에 도끼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 현재의 건물은 1987년 임하댐 건설로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매년 3월 초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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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산탁씨,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광산_탁씨 -> 인물 생몰년 및 행적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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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한옥 답사여행, 세덕사 :: 안동여행, 안동 가볼만한 곳, 안동 세덕사, 안동시 공식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1978850085 -> 경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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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가 종친회를 찾아가다] 광산탁씨(光山卓氏), 백세시대, 2007.4.6. http://www.100ssd.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49 -> 그런데 대종회보 자료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훈련대장을 했던 탁순창이 처가가 있는 안동으로 와 터를 잡고 죽정공을 배향하는 세덕사를 건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죽정공 탁신의 묘가 광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탁순창 때부터 안동에서 세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광산탁씨를 빛낸 첫 인물은 8세손인 탁광무를 꼽을 수 있다. 성리학이 들어와 정착하게 되는 고려의 인물로 당대 제일로 꼽히는 이색, 이재현, 정도전, 이숭인, 정몽주 등 숱한 인물들과 관계를 맺었다. 9세 탁신은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며 은거했다. 그러다 태조 4년에 출사하여 태종, 세종조 때까지 주요직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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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탁광무,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496
  
 
[[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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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안동시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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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16 영문집필]]
 
[[분류:2016 영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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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2 국문집필]]

2022년 2월 24일 (목) 12:57 판


안동 세덕사
Sedeoksa Shrine, Andong
안동 세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세덕사
영문명칭 Sedeoksa Shrine, Andong
한자 安東 世德祠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구수리 695
지정번호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37호
지정일 1982년 12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안동 세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2016)

탁순창(卓順昌)이 고향에 내려와 조선 숙종(肅宗) 25년(1699)에 지었다. 여기에는 그의 6대조와 7대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정문과 강당인 추원당(追遠堂) 그리고 사당인 세덕사(世德祠) 등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이며 가운데 마루가 있고 좌우에 방이 있다. 세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一’자형 맞배지붕 건물로 경사진 언덕에 위치하여 돌계단으로 오르내리게 되어 있다.



  • 국문 해설문에 오류가 있음. “6대조와 5대조”로 수정해야 함.

수정 국문(2022)

초고

세덕사는 임진왜란 때 훈련대장을 역임한 탁순창(卓順昌)이 전쟁이 끝난 후 안동으로 내려와 조상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숙종 25년(1699)에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는 탁순창의 6대조 탁광무(卓光茂, 1330~1410)와 그의 아들 탁신(卓愼, 1367~1426)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탁광무는 고려 충혜왕 1년(1331) 과거에 급제한 후 당대의 유명한 유학자들과 교유했고, 탁신은 조선 태조 4년(1395)에 벼슬길에 오른 뒤 세종대까지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정문과 강당, 사당인 세덕사까지 3동의 건물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다.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지어졌으며, 매년 3월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 추원당의 배면과 세덕사의 전면에는 나무 판자로 된 문이 달려 있다.
  • 추원당에는 ‘오계서당’이라 적힌 현판이 함께 걸려있는데, 이 서당에 관련한 이야기는 검색되지 않으며, 수몰 이전 원래 있었던 곳이 어디인지도 검색되지 않음 -> 확인 필요
  • 탁광무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안동으로 내려온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항목 내용 참조), 것은 처가가 안동이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으므로 확인 필요함.

1차 수정

영문

Sedeoksa Shrine, Andong

Gyeongsangbuk-do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 37 Gusu-ri, Giran-myeon, Andong, Gyeongsangbuk-do

This shrine was built in 1699 by Tak Sun-chang, who was a military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for his 5th and 6th-generation ancestors.

The complex is composed of a main gate, a lecture hall named Chuwondang, and the shrine. As the shrine is located on a hilly slope, a set of stairway was installed in front of the building.


참고자료

  • 안동 세덕사,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69 -> 건물은 정문을 비롯하여 강당인 추원당(追遠堂)과 사당인 세덕사 등 모두 3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추원당은 민도리 홑처마 팔작지붕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一’자형이며, 가운데 마루를 깔았고, 좌우 툇간에 방을 들였다. 5량가로 도리의 단면은 8각이다. 고종 당시 서원 훼철령이 내려졌을 때 향리들이 기둥에 도끼질한 흔적이 남아 있다. / 현재의 건물은 1987년 임하댐 건설로 현 위치로 옮긴 것이다. 매년 3월 초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 광산탁씨,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광산_탁씨 -> 인물 생몰년 및 행적 확인
  • 안동 한옥 답사여행, 세덕사 :: 안동여행, 안동 가볼만한 곳, 안동 세덕사, 안동시 공식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1978850085 -> 경내 사진
  • [명문가 종친회를 찾아가다] 광산탁씨(光山卓氏), 백세시대, 2007.4.6. http://www.100ssd.co.kr/news/articleView.html?idxno=2749 -> 그런데 대종회보 자료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훈련대장을 했던 탁순창이 처가가 있는 안동으로 와 터를 잡고 죽정공을 배향하는 세덕사를 건립한 것으로 보고 있다. 죽정공 탁신의 묘가 광산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탁순창 때부터 안동에서 세거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광산탁씨를 빛낸 첫 인물은 8세손인 탁광무를 꼽을 수 있다. 성리학이 들어와 정착하게 되는 고려의 인물로 당대 제일로 꼽히는 이색, 이재현, 정도전, 이숭인, 정몽주 등 숱한 인물들과 관계를 맺었다. 9세 탁신은 공민왕 때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자 불사이군의 절의를 지키며 은거했다. 그러다 태조 4년에 출사하여 태종, 세종조 때까지 주요직을 역임했다.
  • (참고) 탁광무,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4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