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충겸 선생 묘 및 신도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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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沈忠謙 先生 墓 ― 神道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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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산135-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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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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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심충겸(1545-1594)의 묘와 신도비이다. 묘에는 부인 전주이씨가 함께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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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심충겸(1545-1594)의 묘와 신도비이다. 묘에는 부인 이씨가 함께 묻혀 있다.  
  
 
심충겸은 1572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재위 1567-1608)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하였으며, 병사를 훈련시키고 군량미 조달에 공헌하는 등 왜적 방어에 힘썼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604년에 공신으로 기록되었다.
 
심충겸은 1572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재위 1567-1608)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하였으며, 병사를 훈련시키고 군량미 조달에 공헌하는 등 왜적 방어에 힘썼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604년에 공신으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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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0일 (수) 09:51 기준 최신판

심충겸 선생 묘 및 신도비
Tomb and Stele of Sim Chung-gyeom
대표명칭 심충겸 선생 묘 및 신도비
영문명칭 Tomb and Stele of Sim Chung-gyeom
한자 沈忠謙 先生 墓 ― 神道碑
주소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산135-1번지
지정번호 양평군 향토유적 제7호



해설문

국문

사양당(四養堂) 심충겸(1545~1594)은 당파 서인(西人)의 우두머리인 심의겸(沈義謙)과 조선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의 동생이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왕을 모시고 피난하였다가 세자 광해군의 일행과 함께 병사를 훈련시키고 군대 식량을 마련하는 등 왜적 방어에 힘썼다. 묘에는 부인 전주 이 씨가 함께 묻혀 있다.

신도비는 인물의 생애와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심충겸 신도비는 인조 4년(1626)에 세운 것으로 묘의 우측에 있다. 비석의 글은 신흠(申欽)이 짓고 막내아들 심열(沈悅)이 글자를 썼다. 바위에 홈을 파서 세운 것이 특이하다.

영문

Tomb and Stele of Sim Chung-gyeom

This is the tomb and stele of Sim Chung-gyeom (1545-1594), a civil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Sim’s wife, Lady Yi, is also buried in the tomb.

Sim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72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With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in 1592, he escorted King Seonjo (r. 1567-1608) to refuge near the northern border of the Korean Peninsula. He also participated in defending the country from the Japanese invasions by training the army and supplying food provisions for the troops. In recognition of his loyalty, Sim was posthumously bestowed the title of meritorious subject in 1604.

The stele, which records Sim's life and achievements, was erected in 1626. The epitaph was composed by Sin Heum (1566-1628), a civil official of the mid-Joseon period, and calligraphed by Sim Yeol (1569-1646), the youngest son of Sim Chung-gyeom. A shrine dedicated to Sim, called Chungiksa, is located to the southeast of the tomb.

영문 해설 내용

조선 중기의 문신 심충겸(1545-1594)의 묘와 신도비이다. 묘에는 부인 이씨가 함께 묻혀 있다.

심충겸은 1572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 선조(재위 1567-1608)를 모시고 의주로 피난하였으며, 병사를 훈련시키고 군량미 조달에 공헌하는 등 왜적 방어에 힘썼다.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1604년에 공신으로 기록되었다.

그의 생애와 업적을 기리는 신도비는 1626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조선 중기의 문신 신흠(1566-1628)이 지었고 글씨는 심충겸의 막내아들 심열(1569-1646)이 썼다. 묘역의 남동쪽에는 심충겸을 제향하는 사당인 충익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