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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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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산 김창숙 생가
심산 김창숙 생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심산 김창숙 생가
한자 心山 金昌淑 生家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대가면 칠봉2길 50-4 (칠봉리)
지정번호 경상북도 기념물 제83호
지정일 1991년 5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1,094㎡
웹사이트 심산 김창숙 생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가옥은 독립운동과 교육진흥에 일생을 바친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1879~1962)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김창숙은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강제로 점령당하기 이전부터 애국계몽운동*에 매진하였고, 강점된 이후에는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러던 중 일본에 의해 투옥되어 모진 고문으로 다리를 저는 등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해방 후에는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고 성균관대학을 세워 초대총장을 역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현재 가옥은 안채, 사랑채, 판각고*로 이루어져 있다. 김창숙이 태어난 건물은 그가 22세 되던 해인 대한제국 광무 5년(1901) 화재로 모두 불타버렸고, 같은 해에 지금의 안채를 다시 지었다. 그리고 1991년 사랑채와 판각고를 새로 지으면서 집에 흙돌담을 둘렀다.


  • 애국계몽운동 : 일본의 침략에 맞서 1905~1910년 사이에 전개된 국권 회복 운동.
  • 판각고(板刻庫)는 목판을 보관하는 창고를 의미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독립운동가이자 교육가로 활동했던 김창숙(1879-1962)이 태어난 곳이다.

김창숙은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한국의 독립 청원서의 준비와 발송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등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해방 후에는 통일 정부 수립을 지지하며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펼쳤고, 1946년 성균관대학교를 세운 후 초대 총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공적을 인정받아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현재 이 집은 안채, 사랑채, 판각고, 대문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1901년 화재로 소실되어 같은 해에 지금의 건물을 다시 지었다. 사랑채와 목판 보관을 위한 판각고는 1991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 현재 판각고에 어떤 목판이 보관되어 있는지는 확인 필요함 (속자치통감강목 목판은 마을 안쪽에 복원된 청천서원 판각고에 소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됨)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