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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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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4월 27일 (월) 09: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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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의사
숭의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숭의사
한자 崇義祠
주소 충청남도 태안군 남면 적돌길 415 (양잠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00호
지정일 1988년 8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숭의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당(사우)은 조상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건물이다. 숭의사는 소주 가 씨 집안의 가유약, 가상, 가침 3대를 기리는 사당이다.

가유약과 가상 부자는 중국 명나라의 장수였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에 들어와 일본군(왜군)과 싸워 공을 세웠다. 일본군(왜군)이 다시 쳐들어온 정유재란 때에는 가상이 군사 천여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와 부산에 주둔하며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아버지를 따라 왔던 가상의 아들 가침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은 채 우리나라에 터를 잡았고, 그 후손들은 ‘소주 가 씨’라는 본관을 지키며 살아왔다. 조선 철종 때에 나라에서 가유약, 가상의 충절과 가침의 효심에 대해 포상하자 삼문에 충신 효자 정려 현판을 걸고 숭의사를 건립하였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숭의사는 소주가씨 집안의 가유약, 아들 가상, 손자 가침을 기리기 위해 1851년에 지은 사당이다.

가유약은 원래 중국 명나라의 장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에 들어와 일본군과 맞서싸우고 돌아갔다. 1597년 일본이 다시 조선에 쳐들어오자 아들과 손자를 데리고 다시 조선에 들어왔으며, 부산에 주둔하며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다가 아들과 함께 전사하였다.

가침은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울산 지역에 터를 잡았고, 그의 아들 4형제가 태안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다. 이후 소주가씨 가문의 후손들이 번창하고, 조정에 건의하여 가유약, 가상의 충절과 가침의 효심을 기리는 사당을 건립하게 되었다.

정문, 2동의 부속건물, 내삼문,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