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수원 화성 - 서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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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12일 (수) 03:21 판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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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 서북공심돈
Northwestern Watchtower of Hwaseong Fortress, Suwon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0주년 기념 특별전 도록 『성곽의 꽃, 수원화성』, 수원화성박물관, 2017.
대표명칭 수원 서북공심돈
영문명칭 Northwestern Watchtower of Hwaseong Fortress, Suwon
한자 水原 西北空心墩
주소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영화동 372-1
지정번호 보물 제1710호
지정일 2011년 3월 3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 1796년(정조 20) 창건
  • 1934년 수리

높은 망루를 세워 주변을 감시하고 적이 오면 공격 가능한 시설이다. 보통 돈대(墩臺)는 외딴 곳에 세워 적의 침입을 감시하고 위급하면 연기를 피워서 신호를 보내는 기능이다. 화성에서는 중국의 군사서적을 참고해서 내부를 비운 공심돈을 만들었으며 주로 망루 역할을 했다. 서북공심돈은 벽돌로 짓고 안에는 목조로 3층 구조물을 설치했다.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층마다 20개씩 뚫어놓았는데 포탄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게 하려는 의도이다.

공사를 마친 뒤 신하들을 거느리고 화성을 찾은 정조는 공심돈이 우리나라 성곽에서 처음 지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마음껏 구경하라고 말했다. 서북공심돈은 화성 안에서도 원형이 잘 남아있는 몇 안 되는 시설이다.

영문

This is a watchtower for monitoring the surroundings and attacking enemies. Its Korean name, gongsimdon, means “hollow outpost.” This is because a gongsimdon conventionally has no facilities in its tall brick tower apart from an inner staircase and arrowslits in the walls. In Korea, this kind of watchtower was only constructed in Hwaseong Fortress. There were originally three watchtowers in Hwaseong Fortress, but only two remain today.

The Northwestern Watchtower is located next to Hwaseomun Gate and has maintained its original structure built in 1796. It consists of three floors and is topped with a pavilion. The brick wall has many arrowslits, as many as 20 on each floor, to ensure the enemy could not find out where the bullets were coming from. When King Jeongjo visited Hwaseong Fortress the year after it was completed, he was greatly satisfied with this watchtower and emphasized how it was the first of its kind to be built in a Joseon fortress.

영문 해설 내용

공심돈은 주변을 감시하고 적이 오면 공격하기 위한 망루이다. 공심돈이란 '비어있는 돈대'라는 뜻으로, 벽돌로 망루를 높이 쌓고 내부에는 계단을 두며 벽에는 총구멍을 냈다. 이러한 건축물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화성에는 원래 세 개의 공심돈이 있었으나 지금은 두 개만 남아있다.

서북공심돈은 화서문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1796년 축성할 때 만든 원형이 잘 남아있다. 내부는 3층으로 구성되어 있고, 꼭대기에는 누각을 올렸다. 벽돌로 쌓은 외벽에는 화포를 쏠 수 있는 구멍을 층마다 20개나 냈는데, 이렇게 포 구멍을 많이 낸 것은 탄환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적이 모르도록 한 것이다. 화성이 완성된 이듬해 화성에 온 정조는 공심돈이 조선 성곽에서 처음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강조하며 크게 만족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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