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수원 화성 - 동북공심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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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3월 3일 (일) 21:57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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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화성 동북쪽에 세운 공심돈이다. 화성에는 모두 세 곳에 공심돈을 세웠는데, 서북공심돈과 이곳만 남고 남공심돈은 복원하지 못했다. 화성성역의궤에서는 중국 요동지방에 있던 평돈을 모방해서 벽돌로 둥근 돈대를 만들고 안에서 이중으로 빙빙 돌도록 했다고 적었다. 실제로는 정확한 원형은 아니고 방형에 모서리를 둥글게 마무리해서 원형에 가깝게 했다. 안팎으로 벽돌로 두터운 벽을 쌓고 안팎 벽 사이 폭 1.2미터 되는 통로를 만들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다. 내부는 3층을 이루며 1층 출입문에서 시계방향으로 구부러진 통로를 따라가면 계단을 올라가 2층 통로로 연결되고 다시 계단을 오르면 3층 망루에 이르게 된다. 벽에는 상하 2단으로 총구멍과 포 구멍을 내고 또 중층 벽에는 활을 쏘는 전안도 뚫었다. 이 구멍들은 총이나 활을 쏘는 용도지만 내부에 빛이 들어오고 환기도 되는 창 역할도 한다. 1층 출입문 옆에는 군사가 숙직하는 온돌방도 마련해 놓았다. 화성이 완성된 이듬해에 좌의정 채제공이 상층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와 보고나서 왕에게 ‘층계가 구불구불하게 나 있으니 제도가 매우 기이하고도 교묘하였습니다’라고 소감을 말하였다. 오주연문장전산고라는 19세기에 편찬한 백과사전식 책에서는 화성에 ‘소라각’이라고 부르는 시설이 있다고 했는데, 내부에 계단이 돌아가는 이 건물을 두고 이른 말이다. 절반 이상 무너져 있던 것을 1979년 복원했다.

  • 연혁 - 1796년(정조20) 창건 / 1979년 복원
  • 규모 - 높이(지면에서 여장 위까지) 6.81m. 동서 12m, 남북 10.5m, 망루 면적 11.56㎡
  • 구조 - 내외 2중의 원통구조, 벽돌조. 망루는 홑처마 우진각지붕

영문

Northeastern Watchtower

This is a watchtower for monitoring the surroundings and attacking enemies. Its Korean name, gongsimdon, means “empty outpost,” as its structure only consists of a tall brick tower, an inner staircase, and arrowslits on the walls. In Korea, this kind of watchtower was only constructed in Hwaseong Fortress.

The Northeastern Watchtower is the only cylindrical brick building constructed during the Joseon period. It consists of three floors and is topped with a pavilion. It is also called “Soragak,” literally meaning “conch tower,” referring to the shape of the spiral staircase inside. This watchtower was largely destroyed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was reconstructed in 1979.

영문 해설 내용

공심돈은 주변을 감시하고 적이 오면 공격하기 위한 망루이다. 공심돈이란 비어있는 돈대라는 뜻으로, 벽돌로 망루를 높이 쌓고 내부에는 계단을 두며 벽에는 총구멍을 냈다. 이러한 건축물은 한국에서 유일하게 화성에서만 볼 수 있다.

동북공심돈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건물 중 유일한 벽돌조의 원통형 건물이다. 내부는 3층으로 되고 나선형의 계단을 두었다. 이 계단의 모양이 소라처럼 생겼다고 하여 일명 ‘소라각’이라고도 불린다. 동북공심돈은 20세기 초에 절반 이상 파괴되었다가 1979년에 복구되었다.


화성 동북쪽에 세운 망루시설이다. 중국 요동 지방에 있던 것을 참고해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전체 형태는 모서리가 둥근 원통형이다. 내부는 3층으로 되고 나선형의 계단을 두었다. 벽에는 총이나 활을 쏠 수 있는 구멍을 냈다. 내부의 나선형 계단을 색다르게 여겨서 소라와 같은 건물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조선시대에 거의 유일하게 만든 벽돌조 원통형 건물이다. 20세기 초에 절반 이상이 파괴되었다가 1979년에 본래 모습으로 복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