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수원 화성 - 동남각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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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남수문에서 동쪽으로 지형이 급하게 솟아오르면서 성벽이 꺾이는 지점에 세운 각루이다. 화성 남쪽의 조망이 뛰어난 요충지이다. 이곳은 풍수설에서 안산(案山)의 봉우리가 일(一)자 모양으로 평평하게 된 지점을 일컫는 일자문성(一字文星)의 자리로 알려져 있다. 안산은 집 터 앞의 낮은 산을 가리키는데, 행궁에서 바라볼 때 이곳과 봉돈 자리가 일자문성에 해당되었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가로세로 길이가 4.34미터로 동일하다. 아래층은 3칸은 벽 없이 개방해 놓고 서남쪽 모서리에 1칸의 온돌방을 두어 수직하는 군사가 머물수 있도록 했다. 상층은 전체에 마루를 깔고 사면에 널빤지 문을 달고 동북쪽 1칸은 출입구로 사용하기 위해 개방해 놓고 사다리를 설치했다. 문은 바깥쪽은 짐승얼굴을 그리고 안쪽은 태극을 그렸다. 가로세로 길이가 같으면 지붕은 사방의 추녀가 꼭대기 한 지점에서 모이는 모임지붕을 하지만 여기서는 일부러 남북 방향으로 짧은 용마루를 만들어 우진각지붕으로 했다. 굳이 우진각지붕을 선택한 이유는 각루의 위용을 살리는 데에 모임지붕보다 우진각 지붕이 더 알맞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우진각지붕은 고대에는 궁전이나 불전에 널리 쓰였고 조선시대에는 주로 성문에서 채택한 형식이다.

  • 연혁 - 1796년(정조20) 건립 / 1979년 복원
  • 규모 - 바닥면적 18.84㎡
  • 구조 - 중층 누각 홑처마 우진각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화성 동쪽 지형이 급하게 솟아 오른 곳에 세운 누각이다. 누에 오르면 화성 남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누각 사면에 널빤지 문을 달았는데 문 바깥에는 짐승 얼굴을 그리고 안쪽은 음과 양의 조화를 상징하는 태극 문양을 그려 넣었다. 화성 축성 공사보고서에서는 이 누각이 서있는 위치를 가리켜, 땅의 속성을 이론화 시킨 풍수설에서 말하는 ‘앞에 바라보이는 언덕(案山)’을 상징하는 곳이라고 설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