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11월 24일 (수) 15:13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성주심원사석조유물.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705250000 성주 심원사...)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
한자 星州 深源寺 石造遺物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백운리 산56-1번지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5호
지정일 2007년 7월 30일
분류 유물/불교공예/기타/기타
시대 통일신라
수량/면적 1괄
웹사이트 성주 심원사 석조유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심원사는 2001년 발굴조사 결과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산지사찰임이 밝혀졌다. 조선 중종 때 보수하였고, 후에 임진왜란으로 불탄 것을 다시 고쳐지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지만, 18세기에 폐사되었다.

이후 2006년 중창공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원사지 및 주변지역에서 다수의 불교관련 석조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중 문화재로 지정된 석조유물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불상광배, 석조불상대좌, 배례석, 신방석, 석탑기단갑석으로 총 6점이며, 고려시대에 제작된 석탑기단갑석을 제외하고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로자나불은 불교의 진리 그 자체를 형상화한 불상이다. 광배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것이며, 대좌는 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받침대이다. 배례석의 정확한 용도는 확신하기 어려우나, 불 또는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려놓는 판돌로 그 앞에서 합장배례*하며 불심을 키웠다고 한다. 신방석은 문지방돌을 의미하며, 석탑기단갑석은 석탑 탑신(塔身) 아래에 위치한 받침돌 위에 뚜껑처럼 덮어놓은 돌을 뜻한다.

이 유물들은 온전한 형태로 남아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대별 유물의 변천과정, 사찰의 연혁 등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특히 불상광배는 전체적으로 조각 기법이 우수하며, 향로 2좌를 배치한 예는 극히 드문 형식이다.


  • 합장배례(合掌拜禮) : 두 손바닥을 마주 대고 절하는 예절.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석조유물들은 2006년부터 실시된 심원사의 복원 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것들이다. 현재 대웅전 아래쪽 축대 앞에 조성된 잔디밭에 전시되어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은 총 6점이다. 목이 없는 불상, 광배, 불상의 대좌, 배례석, 신방석(信枋石)은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며, 석탑 기단부 부재는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머리와 목, 무릎 아래 부분이 파손되어 사라졌지만, 왼손의 손가락을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손 모양을 통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광배는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진리의 빛을 형상화한 것으로, 아래쪽에 향로 2개가 새겨져 있는 것이 독특하다.

심원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고, 18세기 무렵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2001년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4개의 축대 위에 3개의 금당을 갖춘 사찰이었음이 확인되었으며, 당시 기와와 도자기 조각, 광배의 탁본 등의 유물이 출토되기도 하였다. 심원사는 2004년부터 복원이 진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대좌는 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받침대이다. 배례석은 부처님께 합장하고 절을 올리는 자리로, 심원사에 있는 배례석에는 중앙에 연꽃 문양이 새겨져 있다. 신방석은 문지방돌을 의미한다. 광배의 윗부분은 사라졌고, 중간 부분은 시멘트로 보수한 흔적이 남아있다. 석탑 갑석은 몸돌을 지지하기 위해 기단에 덮는 부재이다. 현재 그위에는 탑의 윗부분에 해당하는 부재가 올려져 있다.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둔 지붕돌 위에 모서리에 기둥을 새긴 몸돌이 있고, 그 위로 머리장식 일부를 올린 형태이다. 팔각형의 받침돌은 석등의 부재로 보이며, 연꽃잎을 장식한 형태이다.
  • 대웅전 축대 오른편에 6점의 석조 유물과 함께 놓여있는 석조유물이 있다. 이것은 인근 백운리에 위치한 법수사지에서 옮겨온 것이다.(언제 옮겨왔는지 확인 필요)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 일부가 파손되어 있다. 받침돌 바로 위에는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새긴 작은 몸돌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