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성산동 고분군 - 제61호분(옛 6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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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제61호분은 가야 및 삼국시대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으로, 크기는 지름 16.5×15.5m, 높이 3.7m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으며, 당시에는 6호분이라 불렀다. 무덤 주인이 묻힌 돌방의 중앙부에서는 토기와 쇠 못, 꺽쇠, 불에 탄 목재가 나왔으며, 서북쪽 모서리에서 고둥과 조개가 담긴 굽다리 접시가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은 고대 성주 사람들이 바다 근처의 세력과 교류하였으며 무덤 주인이 나무로 만든 관에 묻혔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단서로 당시의 식생활과 장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61호분은 삼국시대에 조성된 앞트기식 돌방무덤이다. 봉분의 크기는 지름 약 16m, 높이 3.7m이며, 191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시신을 안치하는 돌방 중심부에서 항아리와 접시 등의 토기와 함께 나무로 만든 관의 부속물로 보이는 쇠못과 꺽쇠 등이 발견되었다. 이는 당시의 장례 문화를 유추할 수 있는 단서이다.

또한 돌방의 서북쪽 모서리에서는 바다고둥과 조개 껍데기가 담긴 토기가 출토되었다. 이는 당시 이 지역에 살던 고대인들이 바다를 인근에 둔 세력과 교류했음을 추정하는 근거가 된다.

  • 도굴되어 남아있는 유물이 빈약한 것도 있지만, 옛1호분이나 옛2호분에 비해 피장자의 사회적 지위가 낮았던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출토된 유물 중 도검 등의 무기류가 없는 것으로 보아 피장자를 여성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가야자료총서 2권』 내용 인용)

갤러리


참고자료

  • 기존문안

(발굴조사: 1918. 10. 3. ~ 1918. 10. 7. 조선총독부 / 무덤크기: 지름 16.5×15.5m, 높이 3.7m / 출토유물: 항아리, 굽다리 접시, 쇠손칼, 꺾쇠 등)
무덤 주인이 묻히는 돌방에서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북쪽 벽에서 고둥과 조개가 담긴 토기들이 출토되었다. 바다와 떨어진 내륙지방 성주에서 바다고둥과 조개의 등장은 고대 성주사람들이 바다 인근 세력과 교류하였음을 보여준다. 또한 당시 사람들의 식생활과 장례문화까지도 살펴볼 수 있다.
한편 돌방의 중앙부에서는 쇠 못·꺽쇠·나무 조각 등이 발견되었는데, 무덤 주인이 나무로 만든 관에 묻혔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단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