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성산동 고분군 - 제56호분(옛 1호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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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제56호분은 가야 및 삼국시대 앞트기식 돌방무덤(횡구식석실)으로, 크기는 지름 14.0×12.0m, 높이 2.6m이다. 1918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굴 조사하였으며, 당시에는 1호분이라 불렀다. 제57호분(옛 2호분)을 조사하던 중 발견되어 유물을 수집하는 데만 중점을 두었던 2일 만의 졸속 발굴로, 당시의 조사목적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고분이다.

돌방에서는 그릇받침위에 긴 목 항아리가 얹어진 채로 발견되었다. 굽다리 접시, 금 귀걸이, 쇠창, 은 관 꾸미개, 은 허리띠 꾸미개, 손잡이가 은으로 장식된 둥근 고리 큰 칼 등도 발견되었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도굴이나 붕괴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아 유물의 배치 상황 등이 파악되었다고 한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56호분은 삼국시대에 조성된 앞트기식 돌방무덤이다. 봉분의 크기는 지름 12~14m, 높이 2.6m이며, 1918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시신이 안치되는 돌방에서는 그릇받침과 긴 목 항아리, 굽다리 접시 등의 토기류, 금 귀걸이, 은 관 꾸미개, 은 허리띠 꾸미개 등의 장신구들, 쇠창과 손잡이를 은으로 장식한 둥근 고리 큰 칼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 무덤은 제57호분을 조사하던 과정에서 발견되었으며, 보고서에 따르면 이 고분은 도굴이나 붕괴 등의 피해가 없어 유물의 배치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선총독부 조사팀은 2시간 만에 돌방 내부로 진입하였고, 이틀 만에 발굴 조사를 마쳤다고 한다. 이는 당시 일제의 조사가 유물 수집에만 중점을 두고 있었던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갤러리


참고자료

<지자체 1자 제공 문안>
(발굴조사: 1918.9.27. ~ 1918.9.29. 조선총독부 / 무덤크기: 지름 14.0×12.0m, 높이 2.6m / 출토유물: 그릇받침, 긴 목 항아리, 금 귀걸이, 은 관 꾸미개, 은 허리띠 꾸미개, 둥근 고리 큰 칼 등)
조선총독부의 조사팀은 1918년 9월 27일 오전 10시 고분 꼭대기에서 수직으로 파내기 시작하여 12시 반에 돌방 내부로 진입하였다. 오늘날은 상상하기도 힘든 졸속 발굴로, 당시의 조사가 유물을 ‘수집’하는 데만 치중하였음을 보여준다.
도굴이나 붕괴, 흙 유입 등의 피해를 입지 않아 유물의 배치 상황 등이 파악되었으며, 각종 토기를 비롯해 금 귀걸이, 은 관 꾸미개, 은 허리띠 꾸미개, 둥근 고리 큰 칼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