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주 성산동 고분군 - 제48호분(옛 대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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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해설문'''== ===국문=== 제48호분은 가야 및 삼국시대 구덩식 돌방무덤(수혈식석실)으로, 크기는 지름 30m, 높이 7.4m이다. 1920년 조선총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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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cient Tombs in Seongsan-dong, Seongju - Tomb No. 48 (Formerly Daebun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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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 No. 48 is a stone chamber pit tomb. Its earthen burial mound measures 30 m in diameter and 7.4 m in height. It was excavated in 1920 by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who named it Daebun, meaning the “Grand Tomb,” as it was the largest of the five tombs excavated at the time. Unfortunately, because an official excavation report was never published, no concrete data is available about the artifacts unearthed from this to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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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is said that vessel stands, mounted dishes, and long-necked jars were discovered in the tomb during the excavation. Also, traces of fish bones, shellfish shells, and rice husks were reportedly identified in some of the excavated earthenware. This data provides important clues about the diet of the ancient people in this area.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48호분은 삼국시대에 조성된 구덩식 돌방무덤이다. 봉분의 크기는 지름 30m, 높이 7.4m이며, 1920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처음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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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호분은 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봉분의 크기는 지름 30m, 높이 7.4m이다. 1920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당시 발굴된 고분 중 가장 크다고 하여 ‘대분’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정식 발굴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출토된 유물이나 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이 고분은 당시 승왜리지군에서 조사된 고분 중 가당 규모가 커서 ‘대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나 발굴 조사와 관련한 정식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출토된 유물이나 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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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는 그릇받침, 굽다리 접시, 긴 목 항아리 등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발견된 토기 일부에서 생선뼈, 조개 껍데기, 왕겨 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곳에서는 그릇받침과 접시, 긴 목 항아리 등의 유물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발견된 토기 일부에서 생선뼈, 조개 껍데기, 왕겨 등의 먹거리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당시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시신을 안치하는 돌방과 딸린덧널이 나란히 축조되었으며, 서쪽에 있는 것이 돌방일 것이다.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9600 | 성주 성산동 고분군(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설명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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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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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 1자 제공 문안
∎발굴조사: 1920년 조선총독부 / 무덤크기: 지름 26.5×23.5m, 높이 7.4m / 출토유물: 그릇받침, 굽다리 접시, 긴 목 항아리, 생선뼈, 조개껍데기, 왕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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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1920년 조선총독부 / 무덤크기: 지름 26.5×23.5m, 높이 7.4m / 출토유물: 그릇받침, 굽다리 접시, 긴 목 항아리, 생선뼈, 조개껍데기, 왕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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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조사 당시 성산동 고분군에서 가장 크다고(大; 큰 대)하여 대분이라 이름 붙였다. 1920년 발굴조사된 제48호분 대분과 제53호분 팔도분은 정식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출토 유물과 조사내용을 상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조사 당시 사진을 통해 약간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br/> 일부 토기에서 생선, 조개, 과일, 곡식과 같은 먹거리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왕겨는 큰 항아리에 담았던 벼의 일부 낱알들이 천오백여년을 지나 껍질만 남은 것이다.
조선총독부의 조사 당시 성산동 고분군에서 가장 크다고(大; 큰 대)하여 대분이라 이름 붙였다. 1920년 발굴조사된 제48호분 대분과 제53호분 팔도분은 정식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출토 유물과 조사내용을 상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조사 당시 사진을 통해 약간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
 
 
 
일부 토기에서 생선, 조개, 과일, 곡식과 같은 먹거리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왕겨는 큰 항아리에 담았던 벼의 일부 낱알들이 천오백여년을 지나 껍질만 남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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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18일 (수) 15:37 기준 최신판

제48호분(옛 대분)
Tomb No. 48 (Formerly Daebun Tomb)
Goto.png 종합안내판: 성주 성산동 고분군



해설문

국문

제48호분은 가야 및 삼국시대 구덩식 돌방무덤(수혈식석실)으로, 크기는 지름 30m, 높이 7.4m이다. 1920년 조선총독부에서 발굴 조사하였으며, 성산동 고분군의 승왜리지군에서 가장 크다고 하여 ‘대분’(大墳)이라고 불렀다. 정식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유물과 조사 내용을 상세히 알 수 없으나, 조사 당시의 사진을 통해 약간의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 무덤에서는 그릇받침, 굽다리 접시, 긴 목 항아리 등의 유물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토기에 담겨있던 생선뼈, 조개껍데기 등과 입 큰 항아리 안쪽에 붙어 있는 왕겨는 천오백여년 전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영문

Ancient Tombs in Seongsan-dong, Seongju - Tomb No. 48 (Formerly Daebun Tomb)

Tomb No. 48 is a stone chamber pit tomb. Its earthen burial mound measures 30 m in diameter and 7.4 m in height. It was excavated in 1920 by Japanese colonial authorities, who named it Daebun, meaning the “Grand Tomb,” as it was the largest of the five tombs excavated at the time. Unfortunately, because an official excavation report was never published, no concrete data is available about the artifacts unearthed from this tomb.

It is said that vessel stands, mounted dishes, and long-necked jars were discovered in the tomb during the excavation. Also, traces of fish bones, shellfish shells, and rice husks were reportedly identified in some of the excavated earthenware. This data provides important clues about the diet of the ancient people in this area.

영문 해설 내용

제48호분은 구덩식 돌방무덤으로, 봉분의 크기는 지름 30m, 높이 7.4m이다. 1920년에 조선총독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당시 발굴된 고분 중 가장 크다고 하여 ‘대분’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정식 발굴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출토된 유물이나 조사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다.

이곳에서는 그릇받침, 굽다리 접시, 긴 목 항아리 등의 유물이 출토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발견된 토기 일부에서 생선뼈, 조개 껍데기, 왕겨 등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 수 있게 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갤러리

참고자료

  • 지자체 1자 제공 문안
    • 발굴조사: 1920년 조선총독부 / 무덤크기: 지름 26.5×23.5m, 높이 7.4m / 출토유물: 그릇받침, 굽다리 접시, 긴 목 항아리, 생선뼈, 조개껍데기, 왕겨 등)

조선총독부의 조사 당시 성산동 고분군에서 가장 크다고(大; 큰 대)하여 대분이라 이름 붙였다. 1920년 발굴조사된 제48호분 대분과 제53호분 팔도분은 정식 보고서가 발간되지 않아 출토 유물과 조사내용을 상세히 파악할 수 없지만 조사 당시 사진을 통해 약간의 정보는 얻을 수 있다.
일부 토기에서 생선, 조개, 과일, 곡식과 같은 먹거리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고대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왕겨는 큰 항아리에 담았던 벼의 일부 낱알들이 천오백여년을 지나 껍질만 남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