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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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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정
석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석문정
한자 石門亭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 287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4호
지정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석문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선조(宣祖) 20년(1587)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이 50세 되던 3월에 공사를 시작하여 8월에 완공한 정자이다. ‘석문’이란 당호(堂號)는 정자 서쪽에 바위 둘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골짜기가 마치 문과 같으므로 지은 것이다.

석문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ㄴ’자형이며,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의 정면 ‘一’자 부분은 팔작지붕이며, 뒤쪽 돌출부분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이 건물은 ‘석문정’과 ‘석문정사’란 편액이 각기 대청 내부와 바깥쪽 도리에 걸려 있다. 자연과 벗하며 유유자적하면서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력하고자했던 학봉은 자연경관이 뛰어난 이 곳을 매우 좋아했다. 동왕 22년 12월 일본통신부사로 뽑혀 이듬해 사신길에 오르기 전 그는 이 곳에서 ‘…(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뒤에 고향에 돌아와 내 죽도록 이 산에 은거하는 사람이 되리[然後賦歸來 永作山中人]’라는「제석문정사(題石門精舍)」시(詩) 한 수를 적고 떠났다. 그러나 이 곳에서 말년을 보내려 했던 그의 바램은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이루어지지 못했다.

수정 국문

초고

석문정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 학봉 김성일(鶴峯 金誠一, 1538~1593)이 선조 28년(1588)에 지은 정자이다. ‘석문(石門)’이라는 이름은 정자 서쪽에 서로 마주하고 있는 바위가 문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졌다.

김성일은 1568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 경상도 지역 유림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김성일은 말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한 장소로 쓰기 위해 이 정자를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으나,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그는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경상도 지역을 돌며 의병 활동을 독려하고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는 등 침략군과의 전쟁에 투신하였으며, 진주성에서 항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건물은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방향에서 왼쪽부터 온돌방과 나무판으로 된 문을 단 마루방이 있으며, 온돌방 뒤쪽으로 온돌방 하나를 더 놓아 ‘ㄱ’자형의 평면이 되었다.


  • 본채에 속한 온돌방의 측면에 돌출되어 있는 지붕은 건물 전면부에 연장된 지붕과 연결된다. -> 건물의 정확한 평면 확인 필요
  • 현재의 건물 기단부는 후대에 정비된 것으로 보이며, 돌의 색으로 보면 비교적 최근일 것으로 보이나 언제 수리되었는지는 검색으로 확인되지 않음.
  • 이 집의 대공(보 위에 설치해 보와 도리를 받쳐주는 부재) 형식은 17세기 이전의 오래된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 대청 안에는 ‘석문정’ 편액이, 바깥쪽 입구에는 ‘석문정사’ 편액이 걸려있다.
  • 지붕은 앞면 ‘ㅡ’자 부분은 팔작지붕으로, 뒤쪽 돌출 부분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1차 수정

참고자료

  • 안동 의성김씨 서지재사 -> 김성일 생애 인용 ; 김성일은 1568년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이황(1501-1570)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 경상도 지역 유림의 중추 역할을 하였다. 1590년 사신으로 일본에 다녀 온 후, 일본이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지만, 2년 후 일본은 조선을 침략하였다. 전쟁이 일어나자 김성일은 자신의 과오를 씻기 위해 경상도 지역을 돌며 의병 활동을 독려하고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는 등, 침략군과의 전쟁에 투신하였다. 진주성에서 항전하다가 병으로 죽었다.
  • 석문정,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815 -> 석문정은 좁은 대지에 ‘ㄴ’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낙동강 쪽으로 시야가 트인 정면 좌우측에 각기 2칸통 온돌방과 4칸통 대청을 배열하였고, 온돌방 뒤편에 돌출된 1칸 온돌방 하나를 더 두었다. 막돌로 허튼층을 쌓은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았는데, 방주를 세운 굴도리 장혀수장집이다. 대청 정면과 배면 중앙 기둥 상부에 안쪽을 초각한 보아지를 끼우고, 대청과 방 사이 경계벽 상부 합보의 대량과 종량 위에 중대공과 대공을 세웠다. 대공은 상부에 종도리와 장혀를 감싸는 운공을 얹고 하부에 대공 양측을 지지하는 둥글게 조각한 부재를 받쳐 큰 하중에 견딜 수 있게 하였다. 이런 대공 형식은 17세기 이전의 오래된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석문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지붕은 앞면 ‘ㅡ’자 부분은 팔작지붕으로, 뒤쪽 돌출 부분은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 학봉 김성일선생이 지었다는 석문정을 찾아서, 송강(松岡) 나들목,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daum.net/6042cjm/15690516 -> 내부 답사 사진(2010년 작성) / 물받이가 설치된 지붕은 판문 세운 마루 쪽으로 보이며, 이곳도 돌출된 형태로 보임(사진 확인) / 사진들을 조합해보면 연장된 지붕을 ‘뒤쪽 돌출부분’으로 설명한 것으로 추정됨.
  • 수려한 경관과 낙동강이 보이는 석문정 :: 안동여행, 안동 가볼만한 곳, 석문정, 안동시 공식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1693307799 -> 석문정사 편액 걸려있는 전면부 사진 참고
  • <기획>낙동강을 거닐다-퇴계ㆍ송암 선생의 숨결이 느껴지는 청성산을 오르다, 경상매일신문, 2020.11.26. http://m.ksmnews.co.kr/view.php?idx=313912 -> 세월은 흘러 ‘청성산의 주인이 되자’고 학봉과 약조한 지도 17년이 지났다. 1585년 어느 날 학봉은 “청성산의 절반을 저에게 기꺼이 주시지 않겠습니까?”라는 편지를 송암(권호문)에게 보냈다. 송암은 이를 받아들여 산의 절반 중 윗부분을 그에게 주었다. 그 이태 뒤 학봉은 그곳에 석문정사를 세웠다. / 석문정 항공사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