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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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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11월 18일 (월) 13:55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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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Choe Sun-u's House in Seongbuk-dong, Seoul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영문명칭 Choe Sun-u's House in Seongbuk-dong, Seoul
한자 서울 城北洞 崔淳雨 家屋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로15길 9 (성북동)
지정번호 국가등록문화재 제268호
지정일 2006년 9월 19일
분류 등록문화재/기타/인물기념시설/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2동, 1층 연면적 안채 62.46㎡, 바깥채 39.46㎡
웹사이트 서울 성북동 최순우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 집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혜곡(兮谷)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생애를 마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혜곡은 개성에서 출생하였고, 본명은 희순(熙淳)이다. 송도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개성부립박물관장이던 고유섭 선생과의 만남을 계기로 박물관의 종사하며 미술사학자로서의 길을 걷게 되었다. 평생을 한국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전통의 현대적 전승, 해외소개에 바치면서, 전시와 저술을 통해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역설하였다.

이 집은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으로 평면은 ‘ㄱ자형’ 안채와 ‘ㄴ자형’ 바깥채가 마주 보며 ㅁ자를 이루되 모서리가 트여 있는 ‘튼ㅁ자형’이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했던 사랑방 앞에는 그의 친필로 “두문즉시심산”이라는 글귀를 새긴 현판이 걸려 있다.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라는 뜻이다. 실내는 조선시대 선비의 방처럼 정갈한 목가구와 백자로 방치레를 하였고, 마당에는 산사나무, 산당화, 모란, 수련, 산국 등을 심었다. 집 전체에서 자연스럽고 소박한 아름다움과 고요함을 추구한 집주인의 안목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주변지역이 개발되자 집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으나 2002년 시민들의 후원과 성금으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매입하여 보수복원을 마치고 2004년 (재)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기금의 시민문화유산 제1호 최순우옛집이란 이름으로 개관하였다.

영문

Choe Sun-u's House in Seongbuk-dong, Seoul

This is the house where Choe Sun-u (1916-1984), an art historian and critic, lived from 1976 until his death.

Born in Gaeseong (in today’s North Korea), Choi devoted himself to discovering and preserving Korean national heritages as well as introducing Korean traditional culture abroad. In 1974, he was appointed as the fourth director of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This 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the 1930s. It consists of a main quarters and outer quarters which form a square shape around a courtyard. In front of Choe's study is a wooden plaque bearing Choe’s own handwriting, which means “with the door closed, here is a deep forest.” The room was furnished with simple wooden furniture and white porcelain, like a room belonging to a Joseon period (1392-1910) literati. In the yard, hawthorns, peonies, lotuses, and wild chrysanthemums are planted.

The house was almost demolished due to a development plan for this area. However, citizens raised funds so the Korean National Trust could purchase and repair the house in 2002. In 2004, it was opened to the public as the Citizen’s Cultural Heritage No. 1. Currently, the men’s quarters is being used as an exhibition room.

영문 해설 내용

미술사학자이자 미술평론가였던 최순우(1916-1984)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최순우는 개성 출신으로, 평생을 박물관에 종사하며 한국 문화유산의 발굴과 보존, 전통의 현대적 전승, 해외 소개에 바쳤다. 1974년에는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취임하였다.

이 집은 193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와 바깥채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최순우가 서재로 사용하던 사랑방 앞에는 그의 친필로 글씨를 쓴 현판이 걸려있는데,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속’이라는 뜻이다. 내부에는 조선시대 선비의 방처럼 정갈한 목가구와 백자를 두었고, 마당에는 산사나무, 모란, 수련, 산국 등을 심었다.

한때 주변지역이 개발되면서 집이 없어질 위기에 처했었다. 2002년 시민들의 후원과 성금으로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매입하여 보수하였고, 2004년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현재 바깥채는 전시실로 사용되고 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