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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site was once occupied by the house where Yi Seung-hyu (1224-1300), a renowned scholar and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resided after resigning from off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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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252, Yi served various posts in the royal court. However, he was dismissed and reinstated a number of times during a turbulent political period of time marked by the Mongol invasions. When he was dismissed due to his memorial to admonish the king for mishandling of state affairs, he came to this village near Dutasan Mountain, his mother’s hometown where he wrote many books over the following ten years. Among them, ''Jewang ungi'' (Songs of Emperors and Kings) holds significance as a history that shows a strengthened sense of national ident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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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ccording to his anthologies, there was Yongandang, the house built by Yi on top of the hill for his residence, to the south of which were a well and a pond with a pavilion. Later, he donated the building of Yongandang to a nearby Buddhist temple which is now called Cheoneun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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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1995, Dongansa Shrine was built in honor of Yi Seung-hyu inside the temple compl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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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는 125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280년 국왕의 실정을 간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고,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으로 들어와 약 10여 년 간 머물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승휴는 여러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1287년에 지은 『제왕운기』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읊은 서사시로, 한국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승휴는 125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280년 국왕의 실정을 간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고,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으로 들어와 약 10여 년 간 머물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승휴는 여러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1287년에 지은 『제왕운기』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읊은 서사시로, 한국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승휴가 남긴 문집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곳 언덕 위에 용안당을 짓고 여기서 생활하였다. 용안당 남쪽에는 우물과 정자가 있었고, 정자 아래에는 연못도 조성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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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가 남긴 문집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곳 언덕 위에 용안당을 짓고 여기서 생활하였다. 용안당 남쪽에는 우물과 정자가 있었고, 정자 아래에는 연못도 조성되어 있었다. 이후 이승휴는 용안당을 인근의 사찰에 시주하였는데, 그 절은 현재의 천은사이다.  
  
이승휴가 머물던 용안당은 현재 천은사라는 사찰이 되었다. 1995년에는 천은사 경내에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가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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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에는 천은사 경내에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가 건립되었다.
  
  

2019년 9월 16일 (월) 16:06 판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eung-hyu in Dutasan Mountain, Samcheok
대표명칭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영문명칭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eung-hyu in Dutasan Mountain, Samcheok
한자 三陟 頭陀山 李承休 遺蹟
주소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
지정번호 사적 제421호
지정일 2000년 9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34,407㎡
웹사이트 "삼척 두타산 이승휴 유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고려 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인 동안거사(動安居士) 이승휴(1224~1300)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집을 짓고 살던 터이다. 고려 충렬왕 13년(1287) 무렵 이승휴는 이곳에서 우리 민족의 역사서에서 가장 귀중한 자료 중 하나인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다.

이승휴는 어렵게 벼슬을 얻었으나 강직한 성품 탓에 여러 번 좌천되었다. 이에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 구동(龜洞)으로 돌아와 「제왕운기」, 「내전록」, 「동안거사집」 등의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제왕운기」는 우리나라 역사와 중국 역사를 칠언시(七言詩)와 오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로, 우리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고 계승 관계를 체계화한 귀중한 자료이다.

「동안거사집」을 보면 이승휴는 언덕 위에 용안당(容安堂)을 짓고 여기서 생활하였다고 한다. 용안당 남쪽에 우물을 만들어 표음정(瓢飮渟)이라고 불렀으며, 그 위에 정자를 짓고 보광정(葆光亭)이라고 불렀다. 보광정 아래에는 연못을 만들어 지락당(知樂塘)이라고 불렀다. 이 내용은 1998년에 실시한 발굴 조사에서 절터와 연못의 흔적, 청자 가마터 등이 나오며 사실로 확인되었다.

영문

Historic Site Related to Yi Seung-hyu in Dutasan Mountain, Samcheok

This site was once occupied by the house where Yi Seung-hyu (1224-1300), a renowned scholar and civil official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resided after resigning from office.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252, Yi served various posts in the royal court. However, he was dismissed and reinstated a number of times during a turbulent political period of time marked by the Mongol invasions. When he was dismissed due to his memorial to admonish the king for mishandling of state affairs, he came to this village near Dutasan Mountain, his mother’s hometown where he wrote many books over the following ten years. Among them, Jewang ungi (Songs of Emperors and Kings) holds significance as a history that shows a strengthened sense of national identity.

According to his anthologies, there was Yongandang, the house built by Yi on top of the hill for his residence, to the south of which were a well and a pond with a pavilion. Later, he donated the building of Yongandang to a nearby Buddhist temple which is now called Cheoneunsa.

In 1995, Dongansa Shrine was built in honor of Yi Seung-hyu inside the temple complex.

영문 해설 내용

고려시대의 뛰어난 문인이자 정치가인 이승휴(1224-1300)가 벼슬을 버리고 내려와 집을 짓고 살던 터이다.

이승휴는 1252년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했다. 1280년 국왕의 실정을 간언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파직되었고, 어머니의 고향인 두타산으로 들어와 약 10여 년 간 머물렀다. 이곳에 머무는 동안 이승휴는 여러 책을 저술하였다. 특히 1287년에 지은 『제왕운기』는 중국과 한국의 역사를 읊은 서사시로, 한국 역사의 독자성과 정체성을 밝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승휴가 남긴 문집의 기록에 따르면, 그는 이곳 언덕 위에 용안당을 짓고 여기서 생활하였다. 용안당 남쪽에는 우물과 정자가 있었고, 정자 아래에는 연못도 조성되어 있었다. 이후 이승휴는 용안당을 인근의 사찰에 시주하였는데, 그 절은 현재의 천은사이다.

1995년에는 천은사 경내에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가 건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