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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이동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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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이동서당
Idongseodang Village Study Hall, Sancheong
파일:산청이동서당.jpg
산청 이동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산청 이동서당
영문명칭 Idongseodang Village Study Hall, Sancheong
한자 免宇郭鍾錫遺蹟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지리산대로2919번길 28-19(사월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96호
지정일 1993년 1월 8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근대인물/광복운동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산청 이동서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산청 이동서당은 면우 곽종석을 기리기 위하여 유학자들과 제자들이 단성면 사월리에 지은 서당이다. 곽종석은 조선후기의 유학자이자 독립의사로, 1919년 조선의 독립을 위해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파리장서*를 작성하고 전달하다 일본 경찰에 붙잡혀 투옥되었다.

이동서당은 1920년에 건립되었으며, 1984년 앞뜰에 유허비**를 세우고 1991년에는 강당 뒤로 사당을 지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강당은 학생들을 가르치던 곳으로 앞면이 5칸, 옆면이 1.5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서재는 학생들의 숙소로 사용되는 공간이며,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앞에서 보았을 때 사다리꼴 모양인 우진각지붕 건물이다. 사당은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 건물이다.


  • 파리장서(巴里藏書):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후 독립선언에 참여하지 못한 유림이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강화회의(講和會議)에 대한 독립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낸 일이 있었는데 이때 보낸 편지를 파리장서라 부름.
  • 유허비(遺墟碑):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영문

Idongseodang Village Study Hall, Sancheong


영문 해설 내용

이동서당은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였던 곽종석(1846-1919)을 기리기 위하여 1920년 유학자들과 제자들이 지은 서당이다.

곽종석은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경상도 지역 유림을 대표하는 학자였다. 연구와 강학은 물론, 현실 문제에도 적극 개입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난 후, 조선의 독립을 국제적으로 호소하기 위해 파리평화회의에 보낼 편지를 작성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체포된지 두달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두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이동서당은 강당, 학생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서재,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 뒤에 위치한 사당은 1991년에 지었고, 1984년에는 앞뜰에 유허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