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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도천서원 신안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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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도천서원 신안사재
Sinansajae Hall of Do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Sancheong
산청 도천서원 신안사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산청 도천서원 신안사재
영문명칭 Sinansajae Hall of Do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Sancheong
한자 山淸 道川書院 新安思齋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문익점로 34-32(신안리)
지정번호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7호
지정일 1983년 8월 24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산청 도천서원 신안사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시대 서원은 지방 교육의 상징적인 장소로, 학문을 연구하고 선현(先賢)들의 제사를 지내며 각 지방 고급 인재들이 수시로 출입하고 교류를 하던 장소이다.

산청 도천서원은 고려시대 문신이자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가져온 문익점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조선 세조 7년(1461)에 세웠으며, 정조 11년(1787)에 ‘도천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았다. 고종 8년(1871)에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5년에 사당인 ‘삼우사’를 짓고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도천서원의 앞쪽에는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당과 생활공간인 동·서재가 있고, 뒤쪽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사당을 두었다. 서원의 가장 앞쪽에는 제사 때 관리들이 숙소로 사용하였던 신안사재가 있다. 조선 명종 6년(1551)에 처음 세웠으며 지금의 건물은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은 것으로 서원 내 건물 중 유일하게 조선 후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신안사재는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의 옆에서 보았을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로, 건물의 양쪽 끝에는 넓은 마루가 있다. 신안사재는 이곳이 교육보다 제사의 기능을 중요시하였음을 보여주며 조선 후기 향촌사회와 서원 건축형식의 변천을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영문

Sinansajae Hall of Docheonseowon Confucian Academy, Sancheong


영문 해설 내용

신안사재는 도천서원에서 제사 때 제관들이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1551년에 처음 세웠으며 지금의 건물은 1804년에 지은 것이다. 서원 내의 건물 중 유일한 조선시대의 건물이다.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도천서원은 고려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문익점(1329-1398)을 기리기 위해 1461년에 세웠다. 1787년 사액을 받았으며,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5년 사당인 삼우사를 짓고 이후 다른 건물들을 추가로 지으면서 서원으로 다시 세워졌다. 현재 경내에는 신안사재 외에도 강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서재, 사당 등이 있다.

문익점은 1360년 과거에 합격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다. 1363년 사신단의 일원으로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 목화씨를 가져왔고, 한국에서 최초로 목화를 재배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서원 인근에는 문익점의 신도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3호)와 문익점의 묘소(경상남도 기념물 제66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