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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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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9월 29일 (일) 20:2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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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Placenta Chamber Site of King Sejong, Sacheon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영문명칭 Placenta Chamber Site of King Sejong, Sacheon
한자 泗川 世宗大王 胎室址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30호
지정일 1975년 2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탄생지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9,900㎡
웹사이트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천 세종대왕 태실지는 세종대왕(1418∼1450 재위)의 태*를 봉안하는 태실**이 있던 곳이다. 조선 왕실에서는 태를 사람 신체의 근원이라고 생각하여 왕자나 공주가 태어났을 때 태를 묻으려고 태실도감을 설치하여 명당을 찾아 태실을 만들었다.

세종대왕 태실은 세종이 왕위에 오른 해인 1418년에 이곳에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태실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적 때문에 크게 훼손되었다. 선조 34년(1601)에 대대적으로 이곳을 수리하였고, 영조 10년(1734)에 세종대왕 태실이라는 비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일본은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으려고 모든 왕의 태실을 부수고 태실에 봉안된 태 항아리를 경기도 양주로 옮긴 후 태실이 있던 땅을 개인에게 팔았다. 이때 세종대왕의 태 항아리도 양주로 옮겨갔다.

지금은 이곳에 개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영조 때 세운 비석과 주변에 흩어진 석조물로 이곳이 세종대왕의 태실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이다.


  • 태(胎): 태반이나 탯줄과 같이 태아를 둘러싸고 있는 여러 조직을 가리키는 말
  • 태실(胎室): 왕실에서 왕, 왕비, 대군, 왕세자, 왕자, 왕세손, 왕손, 공주, 옹주 등이 출산하면 그 태를 모시던 곳

영문

Placenta Chamber Site of King Sejong, Sacheon

This is the site of the placenta chamber of King Sejong (r.1418-1450).

A placenta chamber is a special place where a jar housing a royal baby’s placenta and umbilical cord was enshrined. During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he placenta and umbilical cord of a newborn baby were regarded as the origin of life. Thus preserving them would ensure a healthy, advantageous life for the child [영문 해설에 없지만 설명을 위해 추가했습니다]. This practice was of particular importance for the royal family, who would enshrine the placenta and umbilical cord of a newborn baby in a place known to be very auspicious. The date of burial also had to be selected to be auspicious.

It is unknown where King Sejong’s placenta had originally been buried. Nonetheless, his placenta was relocated here in 1418, the year when he ascended the throne.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7, this site was severely damaged by the Japanese pirates and was repaired in 1601 and 1730. A stele inscribed on it, “Placenta Chamber of King Sejong,” was erected in 1734.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1910-1945), the Japanese intentionally destroyed the royal placenta chambers of the Joseon dynasty wishing the downfall of the lineage. In 1929, King Sejong’s placenta jar was again relocated to Seosamneung in Goyang and the site was sold to an individual.

Currently on this site, only the stele erected in 1734 and some parts of the chamber remains.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 제4대 왕인 세종(재위 1418-1450)의 태를 봉안한 태실이 있던 곳이다.

태실은 조선시대 왕실에서 자녀의 태(胎)를 봉안하기 위해 조성한 석실이다. 태는 생명의 근원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태아가 출산된 이후에도 함부로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보관하였다. 특히 조선 왕실에서는 왕자나 공주가 태어나면 명당을 물색하고 길일을 가려 태를 봉안하였다.

세종의 태가 처음 어디에 봉안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세종이 왕위에 오른 해인 1418년에 이곳으로 옮겨 봉안되었다. 그러나 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에 의해 크게 파손되었으며, 1601년과 1730년에 대대적인 수리가 이루어졌다. 1734년에는 ‘세종대왕 태실’이라고 새긴 비석을 세웠다.

일제강점기인 1929년에 일본은 조선왕조의 정기를 끊을 목적으로 조선 왕조의 태실들을 훼손하였다. 이때 세종의 태 항아리는 경기도 고양의 서삼릉으로 옮겨졌으며, 태실이 있던 땅은 개인에게 팔렸다.

현재 이곳에는 개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으며, 1734년에 세운 비석과 태실 석재 일부만이 남아 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