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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경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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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경백사
Gyeongbaeksa Shrine, Sacheon
사천 경백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사천 경백사
영문명칭 Gyeongbaeksa Shrine, Sacheon
한자 泗川 景白祠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온정2길 42, 518 (온정리)
지정번호 문화재자료 제234호
지정일 1997년 1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3동/3,627㎡
웹사이트 사천 경백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천 경백사는 고려의 일등 개국공신인 신숭겸과 그의 후손이자 고려 후기 학자인 신현, 성리학자 이색, 그리고 벼슬을 탐하지 않고 학문에만 힘썼던 선비 원천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다. 1926년 평산 신씨 후손인 신상, 신환, 신현 신건 3명이 세웠다. 부속 건물로는 장충문과 영수정, 경백서원 등이 있다.

신숭겸은 왕건이 신라 공산(팔공산)에서 견훤에게 포위되자 왕건과 갑옷을 바꿔 입고 왕건을 탈출 시킨 후 적진으로 돌격하여 전사하였다. 후백제군은 왕건의 목인 줄 알고 신숭겸의 목을 가지고 돌아갔다. 이후 왕건은 신숭겸의 공을 기리고자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고, 그 금두상(金頭像)이 도굴 되는 것을 막으려고 춘천, 구월산, 팔공산에도 똑같은 무덤을 만들게 하였다.

현재 사당에서는 신숭겸의 영정을 모시고 평산 신씨 문중과 지방의 유학자들이 해마다 음력 3월에 제사를 지낸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경백사는 평산신씨의 시조인 신숭겸(?-927)과 그의 후손이자 고려 후기 학자인 신현(1298-1377), 이색(1328-1396), 원천석(1330-?)을 모신 사당이다. 평산신씨 후손인 신상, 신환, 신건에 의해 1626년에 세워졌다.

신숭겸은 왕건의 고려 건국을 도와 공신이 되었다. 927년 고려와 후백제가 전투를 벌였을 때 태조가 위험에 처하자, 왕을 탈출시킨 후 왕으로 위장하여 싸우다 전사하였다. 신숭겸을 태조로 오인한 후백제군은 신숭겸의 목을 가지고 돌아갔다. 신숭겸의 죽음을 슬퍼한 태조는 순금으로 머리를 만들고 시신에 붙여 장사를 지내게 했다.

현재 사당에서는 신숭겸의 영정을 모시고 평산 신씨 문중과 지방의 유학자들이 해마다 음력 3월에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