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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성은 세종 24년(1442)병조참판이었던 신인손(辛引孫)이 지방의 관청과 민가를 왜구로부터 보호하려고 이곳 수양산에 돌과 흙으로 쌓은 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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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읍성은 세종 24년(1442)부터 3년에 걸쳐 병조참판이었던 신인손(辛引孫)이 지방의 관청과 민가를 왜구로부터 보호하려고 이곳 수양산에 돌과 흙으로 쌓은 성이다.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약 1500m, 높이는 3~3.5m 정도이고, 성문은 세 곳에 있었다고 한다. 성문 앞에는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옹성*을 설치하였고,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나오게 쌓은 치**를 만들어 성벽을 오르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약 1500m, 높이는 3~3.5m 정도이고, 성문은 세 곳에 있었다고 한다. 성문 앞에는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옹성*을 설치하였고,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나오게 쌓은 치**를 만들어 성벽을 오르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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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heoneupseong Walled 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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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location in an area to protect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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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truction of this walled town started in 1442 upon the order of King Sejong (r. 1418-1450), the four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was finished in 1445. At the time, the wall measured 1.5 km in perimeter, 3-3.5 m in height and had three gates. The remaining part of the wall is 300 m 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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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7, this walled town was occupied by Japanese troops. The following year, a joint army of Joseon and Ming China regained it after a fierce battle against the Japane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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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잠시 왜군에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598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성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이 성을 되찾았다.  
 
이 성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잠시 왜군에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598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성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이 성을 되찾았다.  
  
현재 사천읍성에는 수양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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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사천읍성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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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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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sillok.history.go.kr/id/kda_12407020_001 황희·신개·하연·최사강·황보인 등을 불러 국경 경비 대책을 의논하다]”, 세종실록 97권, 세종 24년 7월 20일 무인 1번째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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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kyujanggak.snu.ac.kr/geo/insp/insp_view.jsp?uci=GK10008_00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 “현성(縣城)은 을축년에 쌓았고 석축(石築)의 둘레는 3,015척이며 높이는 15척이다. 성안에 국창(軍倉)이 있고 샘과 우물 세 곳은 여름에도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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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42년에 읍성을 쌓자는 논의가 있어 왕명이 내려졌고, 1445년에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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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10일 (수) 09:51 기준 최신판

사천읍성
Sacheoneupseong Walled Town
사천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사천읍성
영문명칭 Sacheoneupseong Walled Town
한자 泗川邑城
주소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정의리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144호
지정일 1994년 9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수량/면적 27,943㎡
웹사이트 사천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사천읍성은 세종 24년(1442)부터 3년에 걸쳐 병조참판이었던 신인손(辛引孫)이 지방의 관청과 민가를 왜구로부터 보호하려고 이곳 수양산에 돌과 흙으로 쌓은 성이다.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약 1500m, 높이는 3~3.5m 정도이고, 성문은 세 곳에 있었다고 한다. 성문 앞에는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옹성*을 설치하였고,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나오게 쌓은 치**를 만들어 성벽을 오르는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하였다.

이 성은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치열한 전쟁을 벌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정유재란 이듬해인 9월 28일에 정기룡의 지휘 아래에 있던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성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이 성을 되찾았다.

현재 이곳 사천읍성 주변에는 수양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영문

Sacheoneupseong Walled Town

A walled town, called eupseong in Korean, was established at an important location in an area to protect residents and serve military and administrative functions.

The construction of this walled town started in 1442 upon the order of King Sejong (r. 1418-1450), the fourth king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was finished in 1445. At the time, the wall measured 1.5 km in perimeter, 3-3.5 m in height and had three gates. The remaining part of the wall is 300 m long.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7, this walled town was occupied by Japanese troops. The following year, a joint army of Joseon and Ming China regained it after a fierce battle against the Japanese.

Currently, the area of the walled town is occupied by a botanical garden.

영문 해설 내용

읍성이란 지방 주요 지역에 쌓은 성으로, 지방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 기능을 담당하던 곳이다.

사천읍성은 1442년 세종(재위 1418-1450)의 왕명으로 축성되기 시작했고 1445년에 완공되었다. 성의 둘레는 약 1.5km, 높이는 3~3.5m 정도이고, 성문은 세 곳에 있었다. 현재는 약 300m 길이의 성곽이 남아 있다.

이 성은 1597년 정유재란 때 잠시 왜군에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이듬해인 1598년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성에 진을 치고 있던 왜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이 성을 되찾았다.

현재 사천읍성에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