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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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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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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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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계사 동종은 조선 시대의 승려 사인(思印)이 보조 장인 5명과 함께 숙종 9년(1683)에 만든 범종이다. 원래 영주 희방사에 있었는데 고종 35년(1898)에 화계사로 옮겨졌다. 범종은 절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장엄하게 울리는 소리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종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악업(惡業)을 깊이 뉘우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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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종을 매는 고리인 용뉴(龍鈕) 역할을 한다. 보통 범종의 용뉴는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이 종은 음통이 없고 쌍룡으로만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몸통의 윗부분은 범자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아랫부분은 보상화문과 당초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또한 몸통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佛法)이 전파되길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승려가 공명첩을 얻었다는 사실 또한 기록되어 있다.
====초고====
 
범종은 절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장엄하게 울리는 소리를 통해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종소리를 듣는 자는 자신의 악업을 깊이 뉘우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동종은 조선시대의 승려 사인(思印)이 보조 장인 5명과 함께 1683년에 만들었다. 사인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그가 남긴 작품 중 8개의 동종이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은 원래 영주 희방사에 있던 것을 1898년에 화계사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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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화계사 동종은 구성이 안정적이고, 표현이 사실적이며 화사하여 조선 시대 범종의 수작으로 꼽힌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도 알 수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종을 매다는 용뉴(龍鈕)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이러한 용뉴는 보통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이루어지며, 이처럼 쌍룡으로 장식된 것은 드물다. 몸통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는 문구와 연화당초문 장식 등이 있다. 각 부분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화사하며, 안정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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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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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nze Bell Cast by Buddhist Monk Sain - Hwagyesa Temple, Seoul'''
  
====자문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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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분야별 자문위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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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사찰에서 범종은 의식을 행할 때 사람들을 모으거나 시각을 알릴 때 사용한다.
#*설명 추가 (쌍룡의 용뉴 설명 다음) 종 윗부분인 상대는 범자문으로 장식하였고, 네 면에 정방형 연곽(연뢰를 장식하는 네모난 틀)을 두었다. 연곽 내에는 9개의 연뢰(연꽃봉오리 모양 장식)이 있다. 종 몸통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의 전파를 기원하는 문구를 적은 명문이 있는데, 특히 그 내용 중에는 승려가 공명첩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 사회상을 알려주는 내용이 적혀 있다. 종 아랫부분인 하대에는 보상화문과 당초문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분야별 자문위원2
 
#*동종(銅鐘) 혹은 ‘범종’이라고도 하며, 사찰에서 사용하는 법구이다. 절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대중을 모을 때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범종의 장엄한 소리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이를 듣는 자는 자신의 악업을 깊이 뉘우치게 해주며, 나아가 지옥에 떨어진 중생마저 구제받아 극락으로 갈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어 일찍부터 가장 중요하게 사용된 불교의식에 사용되었다.
 
#*이 동종은 1683년 경상도 영주 소백산 희방사에 봉안하기 위해 승려 장인 사인을 비롯하여 5명의 장인이 함께 만들었다. 화계사로는 매매를 통해 1898년에 옮겨왔다. 사인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신라종의 제작법에 독창성을 합친 종을 만들었으며, 그가 남긴 작품 중 8개의 동종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범종은 꼭대기에 종을 매는 고리인 용뉴(龍鈕)가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 종의 어깨와 입구는 넓은 띠로 장식되어 있으며, 몸통은 사각형의 연곽과 그 사이에 위패의 장식문양이 균형감 있게 배치되어 있다. 또한 몸통의 명문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전파의 기원 문구와 승려가 공명첩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종은 각부 표현이 사실적이고 화사하며, 안정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종을 매다는 용뉴(龍鈕) 역할을 하게 되어 있다.→ 종을 매다는 걸쇠 역할을 하는 용뉴(龍鈕)가 조각되어 있다.
 
  
====2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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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종은 승려 사인이 1683년에 보조 장인 5명과 함께 만들었다. 사인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주종장(鑄鍾匠)으로, 그가 남긴 작품 중 8개의 동종이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범종은 절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장엄하게 울리는 소리를 통해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종소리를 듣는 자는 자신의 악업을 깊이 뉘우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 동종은 조선시대의 승려 사인(思印)이 보조 장인 5명과 함께 1683년에 만들었다. 사인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장인으로, 그가 남긴 작품 중 8개의 동종이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이 종은 원래 영주 희방사에 있던 것을 1898년에 화계사로 옮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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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종을 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이러한 용뉴는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처럼 음통이 없이 쌍룡으로만 장식된 것은 드물다. 몸통의 윗부분은 범자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아랫부분은 보상화문과 당초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또한 몸통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佛法)의 전파를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승려가 공명첩(명목상의 관직을 주는 임명장)을 얻었다는 사실 또한 기록되어 있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종을 매는 고리인 용뉴(龍鈕)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이러한 용뉴는 보통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이루어지며, 이처럼 쌍룡으로 장식된 것은 드물다. 몸통의 윗부분은 범자문으로 장식하였고, 아랫부분은 보상화문과 당초문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또한 몸통의 명문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 전파를 기원하고, 승려가 공명첩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이 종은 각부 표현이 사실적이고 화사하며, 안정적인 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을 알 수 있어 사료적 가치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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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종은 전체적인 구성이 안정적이고, 각 부분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화사하여 조선시대 범종의 수작으로 꼽힌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도 알 수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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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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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mode=packed heights=200px caption="사인비구 제작 동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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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포항보경사서운암동종.jpg | 포항 보경사 서운암 동종<br/>(제1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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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문경김룡사동종.jpg | 문경 김룡사 동종<br/>(제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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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홍천수타사동종.jpg | 홍천 수타사 동종<br/>(제1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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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안성청룡사동종.jpg | 안성 청룡사 동종<br/>(제1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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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서울화계사동종.jpg | 서울 화계사 동종<br/>(제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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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양산통도사동종.jpg | 양산 통도사 동종<br/>(제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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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의왕청계사동종.jpg | 의왕 청계사 동종<br/>(제1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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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강화동종.jpg | 강화 동종<br/>(제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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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llery>
  
 
=='''참고자료'''==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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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보물]]
 
[[분류:보물]]
 
[[분류:범종]]
 
[[분류:범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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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2020년 10월 17일 (토) 05:04 판


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
Bronze Bell Cast by Buddhist Monk Sain - Hwagyesa Temple, Seoul
서울화계사동종.jpg
대표명칭 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
영문명칭 Bronze Bell Cast by Buddhist Monk Sain - Hwagyesa Temple, Seoul
한자 思印比丘 製作 銅鍾 - 서울 華溪寺 銅鍾
주소 서울특별시 강북구 화계사길 117
지정번호 보물 제11-5호
지정일 2000년 2월 15일
분류 유물/불교공예/의식법구/의식법구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사인비구 제작 동종 - 서울 화계사 동종,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울 화계사 동종은 조선 시대의 승려 사인(思印)이 보조 장인 5명과 함께 숙종 9년(1683)에 만든 범종이다. 원래 영주 희방사에 있었는데 고종 35년(1898)에 화계사로 옮겨졌다. 범종은 절에서 시각을 알리거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한다. 장엄하게 울리는 소리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종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악업(惡業)을 깊이 뉘우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는 종을 매는 고리인 용뉴(龍鈕) 역할을 한다. 보통 범종의 용뉴는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 달리 이 종은 음통이 없고 쌍룡으로만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몸통의 윗부분은 범자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아랫부분은 보상화문과 당초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또한 몸통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佛法)이 전파되길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승려가 공명첩을 얻었다는 사실 또한 기록되어 있다.

서울 화계사 동종은 구성이 안정적이고, 표현이 사실적이며 화사하여 조선 시대 범종의 수작으로 꼽힌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도 알 수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영문

Bronze Bell Cast by Buddhist Monk Sain - Hwagyesa Temple, Seoul

영문 해설 내용

불교 사찰에서 범종은 의식을 행할 때 사람들을 모으거나 시각을 알릴 때 사용한다.

이 동종은 승려 사인이 1683년에 보조 장인 5명과 함께 만들었다. 사인은 17세기 중반부터 18세기 초반까지 활동한 주종장(鑄鍾匠)으로, 그가 남긴 작품 중 8개의 동종이 보물 제11호로 지정되었다.

종의 꼭대기에는 두 마리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종을 매는 고리인 용뉴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졌다. 한국 범종의 전통적인 양식에서 이러한 용뉴는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처럼 음통이 없이 쌍룡으로만 장식된 것은 드물다. 몸통의 윗부분은 범자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아랫부분은 보상화문과 당초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또한 몸통에는 왕실의 안녕과 불법(佛法)의 전파를 기원하는 내용이 적혀 있으며, 승려가 공명첩(명목상의 관직을 주는 임명장)을 얻었다는 사실 또한 기록되어 있다.

이 종은 전체적인 구성이 안정적이고, 각 부분의 표현이 사실적이고 화사하여 조선시대 범종의 수작으로 꼽힌다. 또한 당시의 사회상도 알 수 있어 역사적 자료로서도 가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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