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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유천리 요지 5구역-7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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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유천리 요지 5구역-7구역 扶安 柳川里 窯址 五區域-七區域
Goto.png 종합안내판: 부안 유천리 요지



해설문

국문

요지는 자기나 기와, 그릇을 만들어 굽던 가마터를 말한다. 유천리 요지는 11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다양한 청자가 제작되었던 곳으로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유천리 요지 5구역은 12세기에서 13세기 전반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에서는 접시, 발, 대접, 완(찻잔), 뚜껑 등의 일상용 그릇이 나왔는데, 그 중 15호 요지에서는 상·중·하의 다양한 품질의 청자가 출토되었다.

유천리 요지 6구역은 12세기에서 13세기에 운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접시, 발, 대접, 완(찻잔), 뚜껑 등의 일상용 그릇과 도지미*, 갑발* 등의 요도구가 출토되었다. 도지미는 원통형, 원반형, 삼각각뿔형이 출토되었는데 대부분 규석 받침을 하고 있어 뛰어난 상급의 청자를 생산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청자는 무늬가 없는 무문이 주를 이루고 있고, 압출양각*과 음각의 시문 기법이 일부 확인되었다.

유천리 요지 7구역에서는 무늬가 없는 무문, 음각, 상감 등 다양한 기법으로 새겨진 청자들이 출토되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기형과 시문기법, 문양, 요도구류 등은 진서리 요지에서 출토된 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상감청자의 출토비율이 진서리 요지에 비해 낮은 것으로 보아 가마의 운영시기는 고려청자가 절정에 이르는 13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유천리 요지는 우수한 재료와 제작기술을 이용하여 고려 왕실과 귀족층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한 곳으로써 우리나라 도자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도지미: 가마에서 도자기를 구울 때 도자기를 놓는 받침
  • 갑발(匣鉢): 도자기를 구울 때 담는 큰 그릇
  • 압출양각(壓出陽刻): 흙으로 만들어 구운 문양 틀을 사용해 그릇에 문양을 찍어내는 기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부안 유천리 요지는 12세기에서 13세기에 걸쳐 다양한 청자가 제작되었던 가마터로, 총 7개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5구역부터 7구역까지는 주로 12세기에서 13세기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가 분포되어 있다.

5구역과 6구역에는 각각 2기의 가마터가 있다. 5구역의 15호 요지에서는 최상품부터 하품까지 다양한 품질의 청자가 출토되었다.

6구역에는 2기의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 중 1기는 연소실-소성실-배연부-유물 퇴적구로 이어지는 구조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확인되었으며, 특히 소성실과 유물 퇴적구 자리에서 초벌 단계의 청자들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함께 확인된 규석 받침의 요도구 등의 유물들을 볼 때 이곳의 가마들은 상급의 청자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구역에는 고려청자의 제작이 절정에 이르렀던 13세기 중엽에 이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9기의 가마터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무늬가 없는 것부터 상감기법으로 제작된 것까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한 청자들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