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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택은 조선 후기 경북 북부 지방 사대부(士大夫) 저택(邸宅)의 다양한 기능과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지형의 높낮이를 잘 살린 건물 배치와 높은 기단, 일상생활에 사용한 민구(民具) 등 전통적 풍습을 잘 담고 있어 격조 높은 고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고택은 조선 후기 경북 북부 지방 사대부(士大夫) 저택(邸宅)의 다양한 기능과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지형의 높낮이를 잘 살린 건물 배치와 높은 기단, 일상생활에 사용한 민구(民具) 등 전통적 풍습을 잘 담고 있어 격조 높은 고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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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용 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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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ngseokheon Historic House, Bong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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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석헌 고택은 1700년대에 권이번(權以璠, 1678~1763)이 둘째 아들인 권명신(權命申, 1706~1778)에게 살림집으로 지어 준 가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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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택의 본채는 산을 등지고 지반의 경사가 심한 곳에 지어졌는데, 정면에 축대를 쌓아 기단을 높게 조성하였다. 높은 축대로 인해 건물이 매우 크게 보이기 때문에, 기둥의 높이를 최대한 낮추어 지었다. 이는 집을 건립할 당시 권이번이 관직이 없었으므로, 당시의 가옥 규제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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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의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으며, 사랑채의 앞쪽에는 영풍루라는 2층 누각이 있다. 1층은 수장공간이고 2층은 창을 설치해서 풍광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본채의 뒤쪽 가장 높은 곳에는 사당이 있으며, 그 외에도 사외와 외손들이 기거하던 못채와 방앗간채 등이 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2018년 7월 23일 (월) 07:08 판

봉화 송석헌 고택
대표명칭 봉화 송석헌 고택
한자 奉化 松石軒 古宅
주소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선돌안길 10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249호
지정일 2007.10.12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
수량/면적 3필지/2,973㎡



해설문

국문

송석헌 고택은 동암(東巖) 권이번(權以璠, 1678~1763) 선생이 둘째 아들인 선암(仙巖) 권명신(權命申, 1706~1778) 선생에게 살림집으로 지어 준 가옥이다.

권이번 선생의 자는 주성(周成)이고 호는 동암(東巖)이며, 본관은 안동(安東)으로서 사복시정(司僕侍正)에 추증(追贈)되었다. 또한 권명신 선생의 자는 태중(台仲)이고 호는 선암(仙巖)으로서 좌승지(左承旨)에 추증되었다.

이 고택은 선돌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으며, 산을 등진 경사지형(傾斜地形)에 축대를 쌓아 정면 기단(基壇)을 높게 조성하였다. 마당에서 볼 때 집이 크게 보이게 되어 기둥 높이를 최대한 낮추어 지었다. 이는 집을 건립할 당시 권이번 선생이 관직이 없어 가옥 규제에 따라 낮게 설계한 것이다.

배치는 7칸 규모의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경사지형을 이용한 본채가 있고 우측으로 사랑채가 보인다. 사랑채의 앞쪽에 2층의 영풍루(迎風樓)가 있으며, 사랑채와 영풍루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 사랑채의 오른쪽에는 선암재(仙巖齋)가 있으며, 뒤쪽 가장 높은 곳에는 사당(祠堂)이 위치해 있다. 본채의 왼쪽에는 별채와 방앗간채가 있고, 지형 관계로 인해 방앗간채가 별채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 고택은 조선 후기 경북 북부 지방 사대부(士大夫) 저택(邸宅)의 다양한 기능과 면모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특히 지형의 높낮이를 잘 살린 건물 배치와 높은 기단, 일상생활에 사용한 민구(民具) 등 전통적 풍습을 잘 담고 있어 격조 높은 고택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문용 원고

Songseokheon Historic House, Bonghwa

송석헌 고택은 1700년대에 권이번(權以璠, 1678~1763)이 둘째 아들인 권명신(權命申, 1706~1778)에게 살림집으로 지어 준 가옥이다.

이 고택의 본채는 산을 등지고 지반의 경사가 심한 곳에 지어졌는데, 정면에 축대를 쌓아 기단을 높게 조성하였다. 높은 축대로 인해 건물이 매우 크게 보이기 때문에, 기둥의 높이를 최대한 낮추어 지었다. 이는 집을 건립할 당시 권이번이 관직이 없었으므로, 당시의 가옥 규제에 따른 것이다.

본채의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으며, 사랑채의 앞쪽에는 영풍루라는 2층 누각이 있다. 1층은 수장공간이고 2층은 창을 설치해서 풍광을 즐길 수 있게 하였다. 본채의 뒤쪽 가장 높은 곳에는 사당이 있으며, 그 외에도 사외와 외손들이 기거하던 못채와 방앗간채 등이 있다.

참고자료

  • "봉화 송석헌 고택", 『지나간 시간을 읽다-민속문화재, 이야기를 입다 』, 문화재청,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