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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복내당.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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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50130&cid=58249&categoryId=58249&expCategoryId=58249 복내당]", 수원화성 테마관, 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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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복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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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福內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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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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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수원읍의 관청 내사(內舍)로 지은 집이다. 내사는 수령이 가족과 함께 거처하기 위해 마련한다. 수원읍의 경우에는 관청 건물을 행궁으로도 이용했기 때문에 복내당은 행궁을 증축하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도 쓰였다. 복내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한나라 무장인 조충국(趙充國)이 말한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擧得於外, 福生於內)’는 뜻을 취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창건하면서 정조가 직접 복내당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었다. 처음에는 북쪽 장남헌(봉수당), 동쪽 은약헌(유여택)과 함께 행궁의 중심 건물이었지만, 행궁을 증축하면서 왕이 머무는 경우는 없고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처음에는 역 ㄱ자형의 작은 규모였다가 1794년(정조18) 가을에 증축이 이루어져서 북쪽으로 온돌 4칸반이 추가되어 전체 ㄷ자 형태가 되고, 서쪽에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게 되었다. 건물은 20세기 초에 행궁이 도립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철거되었다가 지난 2002년 행궁을 복원하면서 다시 지어졌다. 정조가 쓴 복내당 현판은 전하지 않으며 현재의 현판은 건물을 복원하면서 새로 써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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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년(정조 13)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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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4년(정조 18) 증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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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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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읍의 관청 내사(內舍)이며 고을 수령이 가족과 거처하는 용도로 지었다. 처음에는 왕의 숙소로 쓰였으며, 정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었다. 한나라 사람이 말한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을 담았다. 뒤에 행궁을 확장하며 왕의 처소인 장락당을 따로 마련하게 되자 오로지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연혁''' - 1789년(정조13) 건립 / 1794년(정조18) 증축 / 2002년 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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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초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1794년(정조 18)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며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에워싼 분위기를 이뤘다. 20세기 초 도립병원으로 전용되며 철거되었다가 2002년 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다. 정조가 쓴 현판은 전하지 않는다.
*'''구조''' - 겹처마 맞배지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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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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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이 가족과 거처하는 건물이다. 화성행궁을 증축하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 쓰였다. 정조는 복내당이란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다. 복내(福內)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남아있지 않다. 복내당은 왕의 처소인 장락당을 따로 만든 이후에는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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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내당은 처음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 18년(1794)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면서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20세기 초 경기도립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철거되었고, 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다.
  
 
===영문===
 
===영문===
 
'''Bongnaedang Hall'''
 
'''Bongnaedang Hall'''
  
Bongnaedang, built in 1789, was one of the original main buildings of the secondary palace and was used as the sleeping chamber of the king. Later, when the secondary palace was expanded in 1794, Jangnakdang Hall was built as the king’s new sleeping chamber, and this hall came to be used only by local magistrates. The name “Bongnaedang,”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ith happiness from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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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naedang, built in 1789, is one of the original main buildings of the temporary palace and was used as the sleeping chamber of the king. Later, when the temporary palace was expanded in 1794, Jangnakdang Hall was built as the king’s new sleeping chamber, and this hall came to be used only by local magistrates. The name “Bongnaedang (福內堂),”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hich radiates happiness from inside” and is a reference to a poem from Han China.
  
 
*'복'은 happiness 아니면 fortune으로 봐야 할까?
 
*'복'은 happiness 아니면 fortune으로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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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내(福內)라는 이름은 "일으켜 얻는 것은 밖으로부터요, 복을 낳는 것은 안으로부터"라는 한서(漢書)의 글귀에서 따왔다."[http://www.culturecontent.com/content/contentView.do?search_div=CP_THE&search_div_id=CP_THE013&cp_code=cp0210&index_id=cp02100423&content_id=cp021004230001&search_left_menu=5 문화콘텐츠닷컴]  이 설명이 더 낳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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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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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naedang, built in 1789, was one of the first buildings to be built in the temporary palace. It was initially used as the king’s sleeping chamber, but after Jangnakdang Hall was built in 1794, it was used by local magistrates. The name “Bongnaedang (福內堂),”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hich radiates happiness from inside."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복내당은 1789년에 건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행궁의 중심건물로서 왕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1794년 행궁이 증축된 이후로는 수령의 처소로 쓰였다. 복내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복은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복내당은 1789년에 건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행궁의 중심건물로서 왕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1794년 행궁이 증축된 이후로는 수령의 처소로 쓰였다. 복내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복은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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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관청 내 장관이 거처하는 숙소로 지은 건물이다. 조선시대 지방 장관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거느리고 가지 않고 혼자 근무지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장관의 숙소는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처음에는 소규모로 지었다가 행궁으로 사용될 것을 대비해서 시설을 늘렸다. 2002년에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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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문화유산해설문]]
 
[[분류:수원시 문화유산]]
 
[[분류:수원시 문화유산]]
[[분류: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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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수원 화성행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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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18 영문집필]]

2020년 6월 10일 (수) 09:38 기준 최신판


복내당 福內堂
"복내당", 수원화성 테마관, 수원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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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 1789년(정조 13) 건립
  • 1794년(정조 18) 증축
  • 1997년 복원

수원읍의 관청 내사(內舍)이며 고을 수령이 가족과 거처하는 용도로 지었다. 처음에는 왕의 숙소로 쓰였으며, 정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었다. 한나라 사람이 말한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을 담았다. 뒤에 행궁을 확장하며 왕의 처소인 장락당을 따로 마련하게 되자 오로지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애초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1794년(정조 18)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며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에워싼 분위기를 이뤘다. 20세기 초 도립병원으로 전용되며 철거되었다가 2002년 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다. 정조가 쓴 현판은 전하지 않는다.

국문 수정

복내당은 수원읍 고을 수령이 가족과 거처하는 건물이다. 화성행궁을 증축하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 쓰였다. 정조는 복내당이란 이름을 직접 짓고 현판의 글씨를 써서 내렸다. 복내(福內)란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조가 쓴 현판은 남아있지 않다. 복내당은 왕의 처소인 장락당을 따로 만든 이후에는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복내당은 처음에는 역ㄱ자 모양의 작은 건물이었으나 정조 18년(1794) 북쪽으로 온돌방 4칸 반을 추가하면서 ㄷ자 모양으로 확장되었다. 서쪽으로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도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 20세기 초 경기도립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철거되었고, 행궁을 복원할 때 다시 지었다.

영문

Bongnaedang Hall

Bongnaedang, built in 1789, is one of the original main buildings of the temporary palace and was used as the sleeping chamber of the king. Later, when the temporary palace was expanded in 1794, Jangnakdang Hall was built as the king’s new sleeping chamber, and this hall came to be used only by local magistrates. The name “Bongnaedang (福內堂),”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hich radiates happiness from inside” and is a reference to a poem from Han China.

  • '복'은 happiness 아니면 fortune으로 봐야 할까?
  • "복내(福內)라는 이름은 "일으켜 얻는 것은 밖으로부터요, 복을 낳는 것은 안으로부터"라는 한서(漢書)의 글귀에서 따왔다."문화콘텐츠닷컴 이 설명이 더 낳은가?

영문 수정

Bongnaedang, built in 1789, was one of the first buildings to be built in the temporary palace. It was initially used as the king’s sleeping chamber, but after Jangnakdang Hall was built in 1794, it was used by local magistrates. The name “Bongnaedang (福內堂),”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hich radiates happiness from inside."

영문 해설 내용

복내당은 1789년에 건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행궁의 중심건물로서 왕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1794년 행궁이 증축된 이후로는 수령의 처소로 쓰였다. 복내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복은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