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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오층석탑"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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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700270000 법주사 오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700270000 법주사 오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법주사 오층석탑
 
|대표명칭=법주사 오층석탑
|영문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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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Five-story Stone Pagoda of Beopjusa Temple
 
|한자=法住寺 五層石塔
 
|한자=法住寺 五層石塔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
 
|주소=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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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국문===
 
===국문===
법주사 영산전 앞에 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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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곳으로 여겨진다. 법주사 영산전 앞에 있는 오층 석탑은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2층 기단 몸돌, 기단(基壇)* 덮개돌, 4층 탑몸돌, 지붕돌은 없어진 것을 옛 모습대로 제작해 끼워 넣었다. 1층 기단의 가운데 받침돌은 4매로 조립되어 있다. 각 면에는 3개의 코끼리 눈과 같은 모양의 안상*을 새겼고, 안상 안에는 고사리 모양의 귀꽃*이 새겨져 있다. 1층 기단 지붕돌은 2장의 판석(板石)*으로 만들었다. 2층 기단 몸돌은 4매의 판석을 세워 만들었는데,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과 가운데기둥을 새겼다. 1∼3층의 탑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기둥이 있고 5층은 모서리기둥을 새기지 않았다. 특히 1층 탑몸돌 남쪽면에는 문틀*을 새기고 안에 자물쇠를 돋을새김*하였다. 또 모서리기둥과 문틀 옆에는 숙종 17년(1690)에 보광명전(지금의 영산전)을 중수(重修)*하면서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각 층의 탑지붕돌은 밑면에 각각 4단의 계단식 받침을 두었고, 5층은 잘 보이지 않는다. 처마는 하단을 수평으로 하고, 상단은 끝에만 살짝 올렸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보륜(寶輪)*의 장식돌을 차례로 얹어 놓았다. 탑 앞에는 옆면에 안상이 새겨져 있는 배례석(拜禮石)*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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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층 석탑은 원래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의 몸돌을 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위층 기단과 4층 몸돌, 그리고 지붕돌이 없는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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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의 몸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 이상의 몸돌은 크기가 거의 줄지 않았다. 1층과 2, 3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특히 1층 남쪽 몸돌면에는 문 모양을 새기고 안에 자물쇠를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또 모서리기둥과 문틀 옆에는 숙종 17년(1690)에 보광명전(지금의 영산전)을 손질하여 고칠 때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깊이 파였고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가 우아한 곡선을 그린다. 그러나 5층만은 몸돌에 기둥 모양을 새기지 않았고, 지붕돌의 곡선도 밋밋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들을 차례대로 얹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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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오층 석탑은 고려 시대에 세운 탑으로, 일부 석재를 잃어버려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 석탑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탑 부재 일부를 잃어버려 복원한 것이나 고려시대 석탑 연구에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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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단(基壇) : 탑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을 두르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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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단: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
* 안상 : (불교) 석탑의 평평한 면에 새긴 조각
 
* 귀꽃 : (불교) 석등이나 돌탑 따위의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
 
* 판석(板石) : 판자 모양으로 가공되어 바닥이나 벽면에 붙이는 석재
 
* 문틀 : 창문이나 문짝을 달거나 끼울 수 있도록 문의 양옆과 위아래에 이어 댄 테두리
 
* 돋을새김 : 평평한 면에 글자나 그림 따위를 도드라지게 새기는 일
 
* 중수(重修) :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 노반(露盤) : (불교)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 모양의 장식
 
* 복발(覆鉢) : (불교) 탑의 노반(露盤) 위에 그릇을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든 장식
 
* 보륜(寶輪) : (불교) 탑의 상륜부에서 노반(露盤) 위에 있는 기둥머리의 금속 장식. 노반 위의 청화(請花)와 맨 꼭대기의 수연(水煙) 사이에 아홉 개의 테로 되어 있다.
 
* 배례석(拜禮石) : 판석으로 불을 켜거나 향을 피우고 음식을 차려 놓는 판돌
 
  
 
===영문===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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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story Stone Pagoda of Beopjusa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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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pagoda is a symbolic monument enshrining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Although not all pagodas contain the true remains, they are nonetheless worshiped as sacred places that enshrine the Buddha.
  
 
===영문 해설 내용===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산전 앞에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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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은 2층 기단,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과 1,2,3층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부처나 고승의 사리를 안치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문과 자물쇠 모양을 새겼다. 또 1층 몸돌에는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1690년 보광명전(지금의 영산전)을 중수하면서 새긴 것으로 보인다.
 
 
 
탑의 위층 기단부와 4층 몸돌 및 지붕돌은 원래 부재가 사라져 새로 만들어 끼운 것이다.
 
  
법주사는 493년 심지왕사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1623년 허물어졌던 것을 1660년에 중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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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위층 기단과 4층 몸돌과 지붕돌이 없는 상태이다. 기단과 1, 2, 3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문과 자물쇠 모양을 새겼다. 문 모양 옆에는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1690년 보광명전(지금의 영산전)을 보수하면서 새긴 것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가 우아한 곡선을 그린다.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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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경북의 재발견 - 54. 군위 법주사, 경북일보, 2011.1.13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3021&sc_serial_code=SRN220  -> 4층과 5층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없고 지붕돌의 양식도 다르다는 점 등으로 보아 4층 이상의 부재는 이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문화해설사와 함께하는 경북의 재발견 - 54. 군위 법주사, 경북일보, 2011.1.13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3021&sc_serial_code=SRN220  -> 4층과 5층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이 없고 지붕돌의 양식도 다르다는 점 등으로 보아 4층 이상의 부재는 이후에 보충한 것으로 보인다.
 
*내가 사는 그림,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mii2000&logNo=22071111919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내가 사는 그림,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mii2000&logNo=22071111919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stoyy 77616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tory77616&logNo=221826526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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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yy 77616 https://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tory77616&logNo=221826526652 -> 탑 세부 사진 확인 가능
->탑 세부 사진 확인 가능
 
 
*군위 문화원  http://gunwicc.kr/gwcc/board.php?bo_table=cultural&wr_id=17&sfl=&stx=&sst=wr_hit&sod=asc&sop=and&page=3 -> 법주사 연혁 참고
 
*군위 문화원  http://gunwicc.kr/gwcc/board.php?bo_table=cultural&wr_id=17&sfl=&stx=&sst=wr_hit&sod=asc&sop=and&page=3 -> 법주사 연혁 참고
  

2020년 9월 12일 (토) 05:57 판


법주사 오층석탑
Five-story Stone Pagoda of Beopjusa Temple
법주사 오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법주사 오층석탑
영문명칭 Five-story Stone Pagoda of Beopjusa Temple
한자 法住寺 五層石塔
주소 경상북도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 773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7호
지정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탑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법주사 오층석탑,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석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로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곳으로 여겨진다. 법주사 영산전 앞에 있는 오층 석탑은 고려 시대의 석탑이다.

오층 석탑은 원래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의 몸돌을 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위층 기단과 4층 몸돌, 그리고 지붕돌이 없는 상태이다.

탑의 몸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그 이상의 몸돌은 크기가 거의 줄지 않았다. 1층과 2, 3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고, 특히 1층 남쪽 몸돌면에는 문 모양을 새기고 안에 자물쇠를 도드라지게 새겨 놓았다. 또 모서리기둥과 문틀 옆에는 숙종 17년(1690)에 보광명전(지금의 영산전)을 손질하여 고칠 때 새긴 글씨가 남아 있다. 지붕돌은 낙수면이 깊이 파였고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가 우아한 곡선을 그린다. 그러나 5층만은 몸돌에 기둥 모양을 새기지 않았고, 지붕돌의 곡선도 밋밋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들을 차례대로 얹어 놓았다.

법주사 오층 석탑은 고려 시대에 세운 탑으로, 일부 석재를 잃어버려 본래의 모습을 알 수 없으나 고려 시대 석탑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이다.


  • 기단: 건축물의 터를 반듯하게 다듬은 다음에 터보다 한 층 높게 쌓은 단.

영문

Five-story Stone Pagoda of Beopjusa Temple

A pagoda is a symbolic monument enshrining the relics or remains of the Buddha. Although not all pagodas contain the true remains, they are nonetheless worshiped as sacred places that enshrine the Buddha.

영문 해설 내용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오층석탑은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2단으로 된 기단 위에 5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위층 기단과 4층 몸돌과 지붕돌이 없는 상태이다. 기단과 1, 2, 3층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지붕돌 밑면에는 4단의 받침을 두었다.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부처의 사리를 안치한 공간이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문과 자물쇠 모양을 새겼다. 문 모양 옆에는 글씨들이 새겨져 있는데, 이것은 1690년 보광명전(지금의 영산전)을 보수하면서 새긴 것이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가 우아한 곡선을 그린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