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퇴로리 이씨 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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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퇴로리 이씨 고가
Historic House of the Yi Family in Toero-ri, Miryang
밀양 퇴로리 이씨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밀양 퇴로리 이씨 고가
영문명칭 Historic House of the Yi Family in Toero-ri, Miryang
한자 密陽 退老里 李氏 古家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2길 26-1 (퇴로리)
국가유산 종목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
지정(등록)일 1985년 1월 23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6동
웹사이트 밀양 퇴로리 이씨 고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퇴로리에 집성촌을 형성한 여주(驪州) 이씨 자유헌공(自濡軒公)파 종갓집으로 이익구(李翊九)가 1890년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건립했다. 옛 모습대로 잘 보존돼 조선 후기 지방 선비가 살던 집의 원형을 보여준다.

안채, 중사랑채, 사당, 별채가 기와 담장으로 구획돼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담장 너머로 안채가 있고, 오른쪽으로 비켜난 문으로 들어가면 중사랑채가 나온다. 사당은 안채 서쪽에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당호(堂號)*는 청덕당(淸德堂)이다. 중사랑채는 아들 이병희(李炳熹)가 거처하던 곳으로 정면 5칸, 측면 1칸 반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현판에 적힌 ‘성헌(省軒)’은 그의 호이다. 안채 동쪽에 위치한 별채는 안채와 사랑채, 동서 익랑(翼廊)으로 구성돼 있다. 손자 이재형(李載衡)이 건립하였다.

퇴로리 이씨는 민족교육기관인 화산의숙(華山義塾)을 설립하고 선조인 실학자 이익(李翼)의 문집을 펴내는 등 지도층의 책무를 실천하려고 애쓴 선비 가문으로 꼽힌다.


  • 당호: 집에 붙은 이름. 집주인의 호로도 씀.

영문

Historic House of the Yi Family in Toero-ri, Miryang

This house is the head house of the Jayuheongong Branch of the Yeoju Yi clan.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It was first built when Yi Ik-gu (1838-1912), a descendant of the scholar Yi Man-baek (1657-1717, pen name: Jayuheon), moved and settled here in 1890. The village where this house is located, Toero-ri, then became a clan village of the Yeoju Yi clan. Members of the Yi family founded a school named Hwasanuisuk in this village, where they published the collected works of their ancestors.

This house largely retains its original form and is characteristic of the residences of scholar families during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uxiliary quarters, and a shrine. Each building is surrounded by a stone wall to create separate spaces. The women’s quarters is on the left side behind the entrance to the house. The men’s quarters, which is directly across from the gate, was where Yi Ik-gu’s son Yi Byeong-hui (1859-1938) lived. The wooden-floored hall on the far right side of the building features a hanging plaque featuring Yi Byeong-hui’s pen name, Seongheon. The auxiliary quarters on the left of the women’s quarters was built by Yi Ik-gu’s grandson, Yi Jae-hyeong (1891-1970).

To the right of this house is another house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o. 152) built around 1910 by Yi Ik-gu for his younger son Yi Byeong-su (1861-1930).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여주이씨 자유헌공파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조선시대의 학자 이만백(1657-1717, 호: 자유헌)의 후손인 이익구(1838-1912)가 1890년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하면서 처음 지었다. 이후 이 집이 위치한 퇴로리는 여주이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여주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이 마을에 화산의숙이라는 학교를 설립하였고, 선조의 문집을 펴내기도 하였다.

이 집은 원형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어, 조선 말 선비 가문이 살던 집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대문채, 안채, 사랑채, 사당, 별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건물은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다.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안채가 있다. 대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사랑채는 이익구의 아들 이병희(1859-1938)가 거처하던 곳이고, 건물의 맨왼쪽 마루에 걸린 현판에는 이병희의 호인 '성헌'이 적혀 있다. 안채 왼편에 있는 별채는 이익구의 손자 이재형(1891-1970)이 건립한 것이다.

집의 남쪽에는 이익구가 차남 이병수(1861-1930)를 분가시키기 위해 1910년 무렵에 지은 가옥(국가등록문화재 제152호)이 있다.

참고자료

  • 밀양 퇴로리 이병수가옥 기록화 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8. -> 이 가옥(이병수 가옥)은 종가 청덕당 남쪽에 차남 이병수를 분가시키면서 지어준 것이다. 청덕당(본채의 안채 당호) 동쪽에는 이익구의 장남 성헌공이 자신의 차남을 분가시키면서 지어준 별채(쌍매당)이 있다. / 북측 담에 협문을 두어 종가인 청덕당으로 출입했다.
  • 역사N문화,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 고색창연한 실학의 정신, 밀양 퇴로리 근대 한옥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2881 -> 여주 이씨 가문 설명
  • 경남 밀양시 부북면 퇴로리 이씨고택, 주택저널 http://www.jutek.kr/user/selectBbsColumn.do?BBS_NUM=7131&COD03_CODE=c0308&MEN01_NUM=10&MEN02_NUM=35 -> 살창을 둔 고방과 마루방을 두어 트여있는 공간을 둔 것이 독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