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신남서원 경보당
밀양 신남서원 경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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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밀양 신남서원 경보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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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密陽 莘南書院 景報堂 |
주소 |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판정로 125-13 (정곡리) |
지정번호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56호 |
지정일 | 1997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밀양 신남서원 경보당,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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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신남서원은 고려 말 왜구의 소굴 대마도를 정벌한 박위(朴葳) 장군과 아들 박기(朴耆)를 모시는 서원이며, 경보당은 신남서원의 강당이다. 박위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 참여해 조선 개국에 앞장섰다. 지금의 충청도 지역인 양광도 절도사*, 평안도 지역인 서북면 도순문사* 등을 지냈으나 ‘왕자의 난’ 때 정도전 등과 함께 이방원에게 피살됐다.
순조 때인 1822년 후손과 밀양 유림이 서원을 세우고 사당은 ‘상모사’(尙慕祠), 강당은 ‘경본당’(景本堂)이라 하였다. 1871년 고종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사당은 헐렸으나, 강당은 ‘경보당’으로 이름이 바뀌어 재실*로 쓰였다. 1981년 후손과 밀양 유림이 상모사를 다시 지어 서원을 복원하였다.
1994년 우리 손으로 건조한 네 번째 잠수함은 박위의 이름을 붙여 ‘박위함’으로 명명되었다.
- 절도사(節度使): 고려 시대에 둔 지방 장관
- 도순문사(都巡問使): 고려 시대에, 임시로 지방에 파견하던 경관직 벼슬아치
- 재실(齋室): 무덤이나 사당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은 집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으로, 선현 제향과 교육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신남서원은 고려 말의 무관 박위(?-1398)와 그의 아들 박기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1822년에 세워졌다.
박위는 1389년 왜구의 소굴이었던 대마도를 정벌하는 공을 세웠다. 이성계(1335-1408)가 권력을 잡고 새 왕조인 조선을 세우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였으나, 1398년 왕위 계승권을 둘러싸고 벌어진 난에서 왕자 이방원(후의 태종(재위 1400-1418))에게 살해당했다. 박기는 부친이 죽은 후 고향인 밀양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힘썼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사당은 헐렸지만, 강당은 ‘경보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재실의 역할을 하며 두 사람의 제사를 계속 담당하였다.
지금의 서원은 1981년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이 사당을 다시 지으면서 훼철 이전의 모습에 가깝게 복원한 것이다.
현재 경내에는 강당, 동재와 서재, 내삼문, 사당 등의 건물이 있다.
- 1800년대에 파보를 작성하면서 박위는 밀양박씨 정국군파의 파조가 되었다. (https://blog.naver.com/miryangsi/221934518639)
참고자료
- 박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20998
- [밀양 인물 탐방] 밀양이 낳은 명장의 숨결이 서린 경보당 신남서원, 밀양시 블로그, 날 좀 보소! 밀양,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miryangsi/2219345186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