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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송죽리 개성고씨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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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경 송죽리 개성고씨가옥
Historic House of the Gaeseong Go Clan in Songjuk-ri, Mungyeong
문경 송죽리 개성고씨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문경 송죽리 개성고씨가옥
영문명칭 Historic House of the Gaeseong Go Clan in Songjuk-ri, Mungyeong
한자 聞慶 松竹里 開城高氏家屋
주소 경상북도 문경시 덕암안길 19-6 (산양면)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89호
지정일 2011년 6월 2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근대주거/근대도시
시대 일제강점기
수량/면적 4동
웹사이트 문경 송죽리 개성고씨 가옥,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송죽리 개성고씨 가옥은 개성고씨 치당공(痴堂公) 고완(高浣)과 그의 아들 고석림(高碩林)이 1933년 세운 살림집으로, 안채·사랑채·고방채*·대문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는 동쪽 방향을 향해 있는데 남쪽을 향해 있는 사랑채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한 줄로, 혹은 나란히 놓인 것과 다른 모습이다.

안채는 근대로 들어서면서 실제 생활에 필요한 면적이 더 커지게 됨에 따라 집의 규모도 커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집의 평면이 세로와가로로 나누어지고 여러 겹으로 되었다. 머름** 없는 키 큰 창호, 방문 위쪽에 낸 작은 창, 환기를 하려고 만든 창 등은 19세기 후반 근대 시기의 집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 집은 문경에 남아 있는 민가 가운데 큰 규모에 속하며, 근대 시기의 역사와 문화의 변동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고방채(庫房-, 광): 광이 있는 집으로, 창고 겸 하인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활용됨.
  • 머름: 바람을 막거나 모양을 내기 위하여 미닫이 문지방 아래나 벽 아래 중방에 대는 널조각. 창 아래 설치된 높은 문지방.

영문

Historic House of the Gaeseong Go Clan in Songjuk-ri, Mungyeong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고완(1863-1953)과 그의 아들 고석림이 1933년에 지었다. 문경 지역에 남아 있는 전통 민가 가운데 규모가 큰 편에 속한다.

대문간채, 안채, 사랑채, 고방채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을 향해 있는 안채와 남쪽을 향해 있는 사랑채가 서로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안채와 사랑채가 옆으로 혹은 앞뒤로 나란히 배치되는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전통적인 한옥에서는 유교 관습에 따라 남녀의 공간이 뚜렷이 구분되는데, 이 집에서는 사랑채를 지나야 안채를 들어설 수 있어 이러한 구분이 약해진 것을 알 수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고, 앞면, 뒷면, 옆면에 툇마루를 둘렀다. 문지방을 두지 않은 키 큰 방문, 방문 위쪽에 낸 작은 창, 환기용으로 만든 창 등은 생활 방식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 20세기 한옥의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