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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회집·탄옹문집 판목"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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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이 훼철되면서 유회당 장판각에 보관하다가 현재의 숭모각으로 옮김.
 
*도산서원이 훼철되면서 유회당 장판각에 보관하다가 현재의 숭모각으로 옮김.
**유회당 : 권이진이 부모의 묘를 관리하기 위해 1714년에 지은 건물.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cjkks&logNo=22028876576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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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회당: 권이진이 1714년에 지은 강학건물 (https://www.cc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28441)
 
*탄옹집의 서문은 성호 이익이 썼는데, 문집에 실리지 않았음.
 
*탄옹집의 서문은 성호 이익이 썼는데, 문집에 실리지 않았음.
 
**이익이 쓴 서문은 성호전집 제50권 - 서(序)에  <탄옹권선생유집 서문(炭翁權先生遺集序)>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익이 쓴 서문은 성호전집 제50권 - 서(序)에  <탄옹권선생유집 서문(炭翁權先生遺集序)>이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2020년 5월 16일 (토) 12:54 판


만회집탄옹문집판목
Printing Woodblocks of Manhoejip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and Tanongjip (Collected Works of Gwon Si)
만회집탄옹문집판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만회집탄옹문집판목
영문명칭 Printing Woodblocks of Manhoejip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and Tanongjip (Collected Works of Gwon Si)
한자 晩悔集炭翁文集板木
주소 대전광역시 서구 탄방동 239-1
지정번호 대전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일 1989년 12월 13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목판각류/판목류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610판
웹사이트 만회집탄옹문집판목,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만회집·탄옹문집 판목은 조선 후기 예학자 만회 권득기(晩悔 權得己)의 문집인 만회집의 책판과 그의 아들 탄옹 권시(炭翁 權諰)의 문집인 탄옹집의 책판이다.

만회집 책판은 현재 328판이 남아 있는데, 크기는 세로 27.5㎝, 가로 51.0㎝, 두께 3.8㎝이다. 만회집은 1630년경에 아들 권적과 권시 등이 수습한 시문(詩文)을 증손인 권이진이 1712년 경주(慶州) 부윤(府尹) 재임 시에 제작한 것이다. 권이진은 만회집을 간인한 후에 책판을 공주(公州) 유성현(儒城縣) 탄방(炭坊)에 두었으나, 현재는 도산서원(道山書院)에 보관되어 있다.

탄옹집 책판은 현재 282판이 남아 있고, 판목의 크기는 세로 28.2㎝, 가로 50.0㎝, 두께3.8㎝이다. 문집은 저자가 직접 정리한 시록(詩錄)을 손자인 권이진과 증손 권정징(權瀞徵)이 수집한 것이다. 서문은 종손 권정징(權瀞徵)이 이익에게 받았으나 문집에는 실리지는 않았다. 책판의 제작은 권정징이 장수 현감 재임 시에 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권말의 간인을 볼 때 문집은 1738년 봄에 간행되었고 책판은 공주의 도산서원에 보관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영문

Printing Woodblocks of Manhoejip (Collected Works of Gwon Deuk-gi) and Tanongjip (Collected Works of Gwon Si)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학자 권득기(1570-1622, 호 만회)와 아들 권시(1604-1672, 호 탄옹)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목판이다.

권득기는 1589년 과거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으나, 광해군(재위 1608-1623)의 정치에 반대하여 사퇴한 후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권시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으로 이름이 높았다. 잠시 관직생활을 한 이후에는 탄방동 지역에 서당을 짓고 후학들을 가르쳤다. 두 사람 모두 학문에 뛰어났으며, 당시의 대표적인 학자들과 교류하였다.

권득기의 문집 『만회집』은 1630년 아들들이 수습한 시와 산문을 1712년 증손자인 권이진(1668-1734)이 제작한 것이다. 현재 목판 328매가 남아 있으며, 책판의 크기는 가로 51cm, 세로 27.5cm, 두께 3.8cm이다.

권시의 문집 『탄옹집』은 권시가 직접 정리한 글들을 손자인 권이진과 증손자 권정징(1697-1758)이 1738년에 간행한 것이다. 현재 목판 282매가 남아 있으며, 책판의 크기는 가로 50cm, 세로 28.2cm, 두께 3.8cm이다.

이 목판들은 원래 권득기와 권시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도산서원에 보관되어 있었다. 1868년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 서원이 훼철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가, 1987년 권시의 묘역 입구에 숭모각을 지어 보관하고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