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만세교리 태봉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6월 29일 (월) 16:36 판

이동: 둘러보기, 검색


만세교리 태봉
디지털포천문화대전
대표명칭 만세교리 태봉
한자 萬歳橋里 胎封
주소 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만세교리 산8-3
지정번호 포천시 향토유적 제23호
지정일 1986년 4월 9일
소유자 사유



해설문

국문

조선 제21대 국왕 영조(1724~1776 재위)와 후궁 영빈 이씨의 딸 화완옹주(和緩翁主, 1738~1808)의 태(胎)를 묻은 곳이다. 태를 좋은 땅에 묻으면 태의 주인이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고 믿어, 왕실에서는 높고 정결한 곳에 태실(胎室)을 만들어 봉안하였다.

화완옹주는 사도세자의 친동생이며, 남편은 정치달(鄭致達, ?~1757)이다. 영조의 남다른 사랑을 받았지만, 돌도 지나지 않은 딸이 사망한 지 한 달도 못 되어 남편도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다. 영조 51년(1775) 왕세손의 대리 청정을 반대한 일로, 정조가 즉위한 후 옹주의 작호를 박탈하였다.

이 태실은 일제강점기 전국의 태실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해체되었다. 현재 태항아리를 넣었던 옹석(甕石)은 땅에 그대로 묻혀있고, 옹석을 덮었던 개석(蓋石)은 방치되어 있다. 태항아리는 도굴당하여 자취를 알 수 없고, 태지석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표석에는 ‘건륭 3년 정월 19일 축시생 옹주 아지씨 태실(乾隆三年正月十九日丑時生翁主阿只氏胎室)’이라 새겨져 있다.

18세기 왕실의 장태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문화재 명칭 수정 관련 각주 : (수정 예시 : 화완옹주 태실 和緩翁主 胎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태봉등록』의 기록을 통해 태의 주인이 화완옹주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포천향토문화전자대전의 ‘만세교리 태봉’ 항목에는 영조의 딸로만 되어 있어 문화재 명칭의 수정이 필요하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