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화성 해설문

득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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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면서 수원읍의 활쏘는 정자로 지었다. 집 이름을 득중정이라 짓고 정조가 직접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었다. 정자가 지어지자 1790년(정조14) 2월에 이곳에서 수원 유생을 대상으로 한 문무과 별시를 치렀다. 1794년(정조18) 화성 행궁을 증축하면서 득중정 위치를 옮겨 낙남헌 뒤, 노래당에서 처마가 서쪽으로 꺾이도록 해서 북향으로 지었다. 건물 계단 앞에는 어사대를 두어 임금이 활을 쏘는 자리를 마련했다. 정조는 수원에 내려올 때면 늘 득중정에서 직접 활을 쏘았다. 1795년(정조19) 혜경궁의 회갑연을 치르던 때에는 이곳에서 화살촉이 버들잎처럼 생긴 유엽전을 모두 30발을 쏘아 24발을 맞췄다. 이때의 행사를 기념해서 그린 득중정어사도가 지금도 전한다. 활쏘기에 이어 정조는 득중정 앞마당에서 매화포도 구경하였다. 매화포는 종이로 만든 폭약의 일종으로, 불꽃이 매화꽃이 떨어지는 듯한 모습을 한다.

처음 지었던 건물은 규모가 9칸이었다고 하였다. 노래당 뒤에 이건한 후에도 집의 규모는 9칸을 유지했다. 가운데 온돌 2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방과 마루가 길게 이어지는 모습이었다. 다만, 득중정 앞으로 낙남헌이 들어서면서 전면이 넓게 트이지 못하여 활쏘기를 하고 무과 시험을 치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20세기 초에 도립병원이 들어서면서 건물이 사라졌다가 2002년 행궁을 복원하면서 다시 세웠다.

  • 연혁 - 1790년(정조14) 건립 / 1794년(정조18) 현위치 이건 / 2002년 복원
  • 구조 - 홑처마 맛배지붕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수원시 관청내에 있던 활쏘기 하는 건물이다. 조선시대 지방 관청에는 활쏘기 하는 장소가 있어서 평상시 활쏘기를 연마하고 또 관리들 사이에 시합도 열었다. 행궁을 증축하면서 행궁 북쪽 모서리로 옮겨서 다시 지었다. 정조 임금이 여기서 직접 활쏘기를 하고 또 과거 시험도 치렀다. 1795년 모친 생일 잔치 때 정조는 여기서 30발의 활을 쏘아 24발을 맞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