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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는 덕유산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신라 신문왕(618~692 재위)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 지역에서 숨어 살던 그는 하얀 연꽃이 솟아 나온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백련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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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는 조선 말기까지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고, 1900년에 이하섭 군수가 중수한 뒤 기념비를 세웠다. 한국 전쟁(1950-1953) 때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1962년에 새로 지었다. 현재 복원된 사찰은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우화루, 요사(승려들의 거처), 선수당(승려들의 수행공간), 천왕문, 일주문으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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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백련사지(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 백련사 계단(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정관당 부도(靜觀堂 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2020년 5월 4일 (월) 02:33 판


덕유산 백련사
Baengnyeonsa Temple in Deogyusan Mountain
대표명칭 덕유산 백련사
영문명칭 Baengnyeonsa Temple in Deogyusan Mountain
한자 德裕山 白蓮寺
주소 전라북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580



해설문

국문

덕유산 백련사는 산의 중심부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신라 신문왕(618~692 재위) 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숨어 살던 이곳에서 하얀 연꽃이 솟아 나와서 이 자리에 절을 짓고 백련사라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은 조선 시대 유명한 고승 영관대사와 서산대사가 수도하던 곳이기도 하다.

현종 13년(1672)에 윤증(尹拯)이 덕유산을 등정하고 남긴 『유려산행기(遊廬山行記)』와 영조 40년(1764)에 전주 종남산 송광사 승려 채영이 간행한 『서역중화해동불조원류(西域中華海東佛祖原流)』, 영조 41년(1765)에 발간한 『무주부 읍지(茂朱府 邑誌)』, 고종 35년(1898)에 무주 향교에서 간행한 『적성지(赤城誌)』 등에 백련사와 관련한 정보가 등장한다. 이들 문헌에 따르면 구천동 계곡에는 구천동사(九千洞寺), 백련사, 백련암으로 불리는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 말기까지 수리를 거듭하여 오던 백련사는 광년 4년(1900)에 이하섭군수가 백련사를 고쳐 짓고 나서 세운 기념비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 후 한국 전쟁 때 불에 타 없어졌다. 그로인해 지금의 건물은 1962년부터 새로 지은 것이다. 원래 절터가 있던 자리에 대웅전(大雄殿, 절에서 가장 주요한 불상을 모신 법당), 요사(寮舍, 승려들의 거처), 일주문(一柱門, 기둥을 한 줄로 배치한 문), 선수당(禪修堂, 승려들이 수행하는 공간), 원통전(圓通殿, 관음보살을 모신 법당),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여 염라대왕과 시왕을 모신 법당), 천왕문(天王門, 사천왕을 모신 문으로 불법을 지키고 밖에서 오는 사마를 막으려고 세운 문), 우화루(雨花樓, 설법을 위한 법당) 등을 세우고 백련사의 옛 모습을 복원하였다.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지은 대웅전의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이곳에는 백련사지(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 백련사 계단(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정관당 부도(靜觀堂 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영문

Baengnyeonsa Temple in Deogyusan Mountain


영문 해설 내용

백련사는 덕유산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 잡은 사찰이다. 신라 신문왕(618~692 재위)때 백련선사(白蓮禪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이 지역에서 숨어 살던 그는 하얀 연꽃이 솟아 나온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백련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백련사는 조선 말기까지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고, 1900년에 이하섭 군수가 중수한 뒤 기념비를 세웠다. 한국 전쟁(1950-1953) 때 불에 타 없어졌던 것을 1962년에 새로 지었다. 현재 복원된 사찰은 대웅전, 원통전, 명부전, 우화루, 요사(승려들의 거처), 선수당(승려들의 수행공간), 천왕문, 일주문으로 구성된다.

이곳에 백련사지(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 백련사 계단(전라북도 기념물 제42호), 매월당 부도(梅月堂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정관당 부도(靜觀堂 浮屠,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2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