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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시행기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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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7월 13일 (토) 04:48 판 (국문 수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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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법 시행기념비
"경기도지정 유형문화재", 평택시史, 평택시.
대표명칭 대동법 시행기념비
한자 大同法 施行記念碑
주소 경기도 평택시 소사동 140-1
지정번호 시도유형문화재 제40호
지정일 1973년 7월 10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대동법 시행기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대동법은 조선시대에 공물(貢物:특산물)을 쌀로 통일하여 바치게 한 세금제도이다. 대동법 이전에는 각 지방에서 생산되는 공물을 바치게 하였는데, 생산에 차질이 생기거나 자연재해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경우에도 반드시 공물을 특산물로 바쳐야만 했다. 공물의 이런 폐단을 이용한 관리나 상인이 백성을 대신하여 공물로 나라에 바치고 그 대가를 몇배씩 가중하여 백성에게 받아내는 방납(防納)으로 인하여 백성의 부담이 한층 가중되었다.

대동법은 1608년(광해군 즉위년)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이후 100여년 동안 걸쳐 확대 실시되었다. 이후 김육은 1658년에 사망하고 그 이후 1659년 호서지방 주민이 설치 한 비이다

이 기념비는 영의정(領議政) 김육(金堉)이 충청도에 대동법을 시행하도록 상소하여 실시함으로써 충청도 백성들이 한양서 충청도로 가는 첫관문인 길목에 세원 둔 것으로, 현 위치에서 남동쪽 약50m지점에 세웠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이전하여 보존관리하고 있다.

국문 수정안

이 비는 대동법 시행에 대한 김육(金堉, 1580~1658)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대동법은 공납*을 특산물 대신에 쌀로 납부하는 제도로, 선조 41년(1608) 경기도에서 처음 실시된 이후 100여년 동안 걸쳐 확대 실시되었다. 충청도에는 효종2년(1651) 충청감사로 있던 김육의 노력으로 대동법이 실시되었다. 이 비는 효종10년(1659) 호서지방 주민이 건립한 것으로, 충청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세워졌다.

비는 귀부, 비신, 이수를 모두 갖추고 있다. 비문은 이민구가 짓고, 오준이 글씨를 썼다. 원래는 이곳에서 50m 떨어진 곳에 있었으나 1970년대에 옮겨 놓았다.

  • 공납: 조선시대 조세 제도 중 하나. 각 지방의 특산물을 중앙 정부에 바치는 제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