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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삼가헌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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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고은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9월 10일 (목) 00:21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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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성 삼가헌 고택
Samgaheon House, Dalseong
달성 삼가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달성 삼가헌 고택
영문명칭 Samgaheon House, Dalseong
한자 達城 三可軒 古宅
주소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 800
지정번호 국가민속문화재 제104호
지정일 1979년 12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0필지/2,453㎡
웹사이트 달성 삼가헌 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달성군 하빈면 묘리 묘골마을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충정공 박팽년(忠正公 朴彭年)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삼가헌은 묘골마을과 낮은 산 하나를 경계로 하고 있는 파회마을에 자리 잡은 조선시대의 주택이다.

‘삼가헌’이라는 이름은 박팽년의 11대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신의 호를 따서 ‘삼가헌’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에 이웃 묘골마을에서 이곳으로 분가하였고, 1826년에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채인 하엽정(荷葉亭)은 광석의 손자인 규현(奎鉉)이 1874년에 원래 있던 파산서당(巴山書堂)을 약간 앞으로 옮기고 누마루를 달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은 것이다.

‘삼가(三可)‘란 중용(中庸)에 나오는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말하는데 ’천하와 국가를 다스릴 수 있고, 벼슬과 녹봉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을 밟을 수 있다‘라는 뜻이다.

삼가헌은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영남 내륙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넓은 대지에 안채와 사랑채,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별당채, 그 외 여러 부속채로 구성된 배치 형식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과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가 된다.

영문

Samgaheon House, Dalseong

This house was first built in 1769 by Bak Seong-su (1735-1810; pen name: Samga) who at the time was living in the nearby Myogol Village, a clan village of the Suncheon Bak clan to which he belonged. It originally consisted of a single thatched-roof building to be used as Bak Seong-su's personal villa. In 1783, his second son Bak Gwang-seok moved into the house. In 1826, the building was renovated to have a tile roof and was turned into a men’s quarters. In 1869, a women’s quarters was added, and in 1874, Bak Gwang-seok's grandson Bak Gyu-hyeon (pen name: Hayeop) built the pond and the detached quarters. The women's quarters burnt down in 2009 and has since been reconstructed.

The house consists of two areas separated by a stone wall: the area on the right consisting of the gate quarters,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storehouse, and inner gate quarters, and the area on the left consisting of the detached quarters and pond. The 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on the left and underfloor-heated rooms on the right. Next to the men's quarters is the inner gate quarters that leads into the women's quarters. The inner gate quarters has retained its thatched roof, rather than changing it into a tile roof, which is uncommon. The women’s quarters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two underfloor-heated rooms on either side.

The detached quarters, called Hayeopjeong Pavilion, was built by disassembling and renovating the family study hall which was located slightly behind the building's current location. At this time, an elevated wooden-floored porch with balustrades was added. The square pond in front of the pavilion features a round artificial island, which is a common design symbolizing earth and heaven.

  • 사랑채의 구성을 설명하지 않으면서 최근에 재건된 안채의 구조를 설명하는 것이 좀 이상했어요. 구조는 아예 빼도 될 것 같기도 해요.
  • 나중에 초가중문채가 기와집으로 바꿀 가능성이 없는건가요?
  • 처음 지엇을 때 일반 집보다 별당의 성격이 있었을 것 같아서, 이 부분을 설명하는 표현을 추가해 봤어요.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근처의 순천박씨 집성촌인 묘골 마을에 거주하던 박성수(1735~1810, 호: 삼가)가 1769년에 처음 지었다. 원래는 박성수의 개인 용도로 세운 초가 건물 한 채였다. 이후 1783년에 그의 둘째 아들 박광석이 이곳으로 분가해 정착하였고, 1826년에는 초가 건물의 지붕을 바꾸어 사랑채를 세웠다. 1869년에는 안채가 완성되었고, 1874년에는 박광석의 손자 박규현(호: 하엽)이 연못을 조성하며 별당을 세우고 자신의 호를 붙여 하엽정이라 하였다. 안채는 2009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현재 이 집은 돌담으로 두 구역으로 나뉜다. 오른쪽에는 문간채, 사랑채, 안채, 곳간채와 중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왼쪽에는 별당과 사각형 연못이 있다. 사랑채는 왼쪽의 대청과 오른쪽의 온돌방으로 구성된다. 사랑채 옆에는 중문채가 안채와 연결되어 있다. 중문채의 초가지붕은 기와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특이하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있는 구조이다.

하엽정이라는 이름의 별당은 본래 뒤쪽에 서당이었던 건물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누마루와 난간을 덧붙여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했다. 별당 앞의 연못은 직사각형의 연못 중앙에 둥그런 섬을 표현하였다.

초안

이 집은 박성수(1735~1810, 호 삼가헌)가 1769년에 지은 초가집에서 시작된 조선 후기의 살림집이다.

박성수는 박팽년(1417-1456)의 후손이며, 이 집이 위치한 묘동은 순천 박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박성수는 사랑채 자리에 자신의 호를 붙인 초가 건물을 지었는데, 이후 그의 둘째 아들 박광석이 1783년에 분가해 나오면서 이곳에 정착하였으며, 1826년에 원래 있었던 초가건물의 지붕만 바꾸어 사랑채를 세우고 1869년 안채를 완성하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1874년에는 박광석의 손자 박규현(호 하엽정)이 별당을 세우고 연못을 조성하였다.

이 집은 문간채, 사랑채, 안채, 별당과 사각형 연못, 곳간채와 중문채로 이루어져 있다.

‘ㄷ’자형의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있는 구조이며, 2009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왼쪽 날개 건물에 부엌과 화장실이 있다.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하는 중문채의 초가지붕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특이하다.

별당인 하엽정은 파산서당 건물을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개축하면서 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덧붙이고, 자신의 호를 따서 이름을 붙여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별당 앞의 연못은 박광석이 집을 짓기 위해 많은 흙은 파낸 자리에 조성한 것으로, 직사각형의 연못 중앙에 둥그런 섬을 표현하였다.


  • 연못의 네모난 모양은 땅을, 그 안의 둥그런 섬은 하늘을 의미하는 ‘천원지방’의 세계관을 담고 있다.
  • 박팽년은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반대한 이들과 함께 세조를 살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모의는 발각되었고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처형당했다.

참고자료

  • 한국의 전통가옥 41(기록화보고서), 문화재청, 2013. -> 1874년 파산서당 자리에 자리에 지금의 별당채인 하엽정을 세웠다. 하엽정은 박규현의 호이다. 하엽정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4칸 5량의 -자집을 1874년 현재의 모양과 같이 개축한 것이다.
  • (김천령의 한국 정원 이야기⑧) 삼가헌 하엽정, 오마이뉴스, 2018.4.2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25776 -> 2018년까지는 섬에 닿는 외나무다리도 정비해놓았던 것으로 보임 (현재 어떤지 확인 필요.)
  • Culture & History Traveling, 개인 블로그 http://www.dapsa.kr/blog/?p=43892 -> 사랑채는 앞면 5칸 규모인데, 왼쪽 2칸은 사랑마루로, 오른쪽 3칸은 온돌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 별당에 누마루를 달아내는 것은 19세기 유행이었다. 곳에 별당을 조성할 때 연꽃과 국화를 심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