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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금산영응기적비 대한중흥공덕축성비"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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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해설문'''==
===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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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
조선태조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던 중 산신의 영험에 의해 보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을 기념하며 1903년(광무7년) 5월 11일 세운 비석이다. 태조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이곳에서 산신의 호응을 받아 등극할 수 있었고, 그 보은으로 보광산을 금산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다 한다. 의정부 찬정 윤정구가 글을 짓고 써서 세웠다. 높이 2m, 폭 60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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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금산영응기적비와 대한중흥송덕축성비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왕위에 오르자, 그 기도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 후기 문신 윤정구가 1903년에 세운 것이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게 되자 기도했던 장소에 은혜를 갚기 위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비단을 두른다’라는 뜻으로 비단 금[錦] 자를 써서 산 이름을 보광산에서 금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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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은 모두 높이가 2m, 폭이 60㎝, 두께는 15㎝이며 큰 거북 모양 받침돌 위에 비석을 얹은 모습이다. 왼쪽 비에는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라는 뜻이다. 오른쪽 비에는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이 대한 제국으로 부흥할 덕을 기리고 대한 제국의 황제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현재 두 비석은 비각(碑閣) 안에 보관되어 있다. 비각에는 선은전(璿恩殿)이라 적힌 편액이 걸려 있는데, ‘선은’은 ‘하늘의 은덕을 입다’라는 뜻이다.
====초고====
 
비석은 남해 금산 삼불암(三佛巖) 아래의 비각 안에 있는 2기의 비로,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와 관련된 곳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런데 이곳에서 산신의 호응을 받아 왕위에 등극할 수 있었고,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기존의 보광산(普光山)을 금산(錦山)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에 1903년 5월 11일에 의정부 찬정 윤정구(尹定求)가 비를 건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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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석들은 남해 금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대한 제국 시기를 전후로 한 한반도의 근대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2기의 비 가운데 왼쪽 비에는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鷹紀蹟碑)’, 오른쪽 비에는 ‘대한 중흥 공덕축성비(大韓中興公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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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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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해설 내용===
이 2기의 비석은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李成桂, 1335~1408)와 관련된 곳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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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2기의 비석은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가 기도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윤정구(1841~?)가 1903년에 건립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올랐다. 이후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의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이라 부르게 하였고, 이는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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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올랐다. 이후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의 이름을 ‘비단산’이라는 뜻의 금산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비단을 두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비석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윤정구(尹定求, 1841-?)가 1903년에 건립하였다. 왼쪽 비에는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오른쪽 비에는 ‘대한 중흥 공덕축성비(大韓中興公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각각 ‘남해 금산에 신령이 응답한 것을 기록한 비석’, ‘대한제국의 중흥과 공덕을 축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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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비석은 모두 높이가 2m, 폭이 60㎝, 두께는 15㎝이며 큰 거북 모양 받침돌 위에 비석을 얹은 모습이다. 왼쪽과 오른쪽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각각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부흥할 덕을 기리고 대한제국의 황제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비각에는 ‘선은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선은이란 ‘하늘의 은덕을 입었다’는 뜻이다.
 
 
비각에는 선은전(璿恩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선은이란 ‘하늘의 은덕을 입었다’는 뜻이다.
 
 
 
====자문의견====
 
#사적, 매장 위원1
 
#*관련된 곳임을 → 구체적으로 서술(기도처)
 
#*‘대한제국의 중흥과 송덕을 축원하는 비석’ →대한제국이라고 하면 1897년 대한제국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조선 건국과 관련된 내용인가. 조선 건국과 관련된 내용이라면 대한제국으로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을 듯함-검토 요망.
 
#사적, 매장 위원2
 
#*“이성계(李成桂, 1335~1408)”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생몰년과 재위 기간 가운데 택일하여 일관성을 유지할 필요 있음. / “윤정구(尹定求, 1841-?)” 앞의 태조 생몰년에 사용한 기호는 ‘~’인데, 여기서는 ‘-’를 사용함. 통일 필요.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 대한중흥공덕축성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大韓中興頌德祝聖碑)” 한글과 병기된 한자가 맞지 않음. ‘공덕축성비’인데 병기된 한자는 ‘頌德祝聖碑(송덕축성비)’임. / 또 기술 내용에는 “오른쪽 비에는 ‘대한 중흥 공덕축성비(大韓中興公德祝聖碑)’”라고 하여 ‘公’을 사용하였음. 頌德의 오기임.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오른쪽 비문 사진에는 ‘대한 중흥 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각각 ‘남해 금산에 신령이 응답한 것을 기록한 비석’, ‘대한제국의 중흥과 공덕을 축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 전설의 내용을 참고하면 남해 금산 영응 기적비는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라는 의미이고, 대한중흥송덕축성비는 “대한제국 중흥의 덕을 송축하고 국왕의 장수를 축원하는 비석” 정도의 의미임. 재고 필요함.
 
 
 
====2차 수정====
 
이 2기의 비석은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가 기도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올랐다. 이후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의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써서 ‘금산(錦山)’이라 부르게 하였는데, 이는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이다.
 
 
 
두 비석은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윤정구(尹定求, 1841~?)가 1903년에 건립하였다. 왼쪽 비에는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오른쪽 비에는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라 새겨져 있다. 각각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 ‘대한제국 중흥의 덕을 송축하고 황제의 장수를 축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비각에는 선은전(璿恩殿)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선은이란 ‘하늘의 은덕을 입었다’는 뜻이다.
 
 
   
 
   
 
=='''문맥요소'''==
 
=='''문맥요소'''==

2020년 5월 23일 (토) 09:37 판


남해금산영응기적비대한중흥공덕축성비
대표명칭 남해금산영응기적비대한중흥공덕축성비
한자 南海錦山靈應紀蹟碑大韓中興頌德祝聖碑
주소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리 257-3
지정번호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7호
지정일 1998년 11월 13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대한제국시대
수량/면적 2기
웹사이트 남해금산영응기적비 대한중흥공덕축성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남해금산영응기적비와 대한중흥송덕축성비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한 뒤 왕위에 오르자, 그 기도 장소를 기념하기 위해 조선 후기 문신 윤정구가 1903년에 세운 것이다. 이성계는 왕위에 오르게 되자 기도했던 장소에 은혜를 갚기 위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비단을 두른다’라는 뜻으로 비단 금[錦] 자를 써서 산 이름을 보광산에서 금산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두 비석은 모두 높이가 2m, 폭이 60㎝, 두께는 15㎝이며 큰 거북 모양 받침돌 위에 비석을 얹은 모습이다. 왼쪽 비에는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라는 뜻이다. 오른쪽 비에는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는데, ‘조선이 대한 제국으로 부흥할 덕을 기리고 대한 제국의 황제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현재 두 비석은 비각(碑閣) 안에 보관되어 있다. 비각에는 선은전(璿恩殿)이라 적힌 편액이 걸려 있는데, ‘선은’은 ‘하늘의 은덕을 입다’라는 뜻이다.

이 비석들은 남해 금산이라는 이름의 유래와 대한 제국 시기를 전후로 한 한반도의 근대사를 보여 주는 중요한 역사 자료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2기의 비석은 조선왕조의 개창자인 태조 이성계(1392~1398 재위)가 기도하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말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였던 윤정구(1841~?)가 1903년에 건립하였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전국의 명산을 찾아 기도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다가, 마침내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올랐다. 이후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산의 이름을 ‘비단산’이라는 뜻의 금산으로 바꾸었는데, 이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비단을 두른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두 비석은 모두 높이가 2m, 폭이 60㎝, 두께는 15㎝이며 큰 거북 모양 받침돌 위에 비석을 얹은 모습이다. 왼쪽과 오른쪽 비석에 새겨진 글씨는 각각 ‘남해의 금산이 신령스럽게 응답한 사실을 기록한 비석’,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부흥할 덕을 기리고 대한제국의 황제가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비석’이라는 뜻이다. 비각에는 ‘선은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선은이란 ‘하늘의 은덕을 입었다’는 뜻이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남해 금산 문화유산 남해 금산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鷹紀蹟碑) 문화유산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鷹紀蹟碑)
이성계(李成桂) 인물 이성계(李成桂) 1335-1408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 문화유산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
보광산(普光山) 장소 보광산(普光山)
윤정구(尹定求) 인물 윤정구(尹定求) 1841-?
선은전(璿恩殿) 문화유산 선은전(璿恩殿)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금산 이성계 ~와 관계가 있다.
금산 보광산 ~와 관계가 있다.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鷹紀蹟碑) 윤정구 ~가 지었다.
대한중흥송덕축성비(大韓中興頌德祝聖碑) 윤정구 ~가 지었다.
남해금산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鷹紀蹟碑) 이성계 ~와 관계가 있다.
선은전(璿恩殿) 이성계 ~와 관계가 있다.

갤러리

참고자료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77호 남해금산영응기적비대한중흥공덕축성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大韓中興頌德祝聖碑),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5_1_1_0&ccbaCpno=3413802770000#

  •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문화유적조사서.
  • 남해 금산 영응기적비(南海錦山靈應紀蹟碑), 지정문화재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