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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흥장군 묘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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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흥장군 묘 일원
Tombs of Nam Yu and Nam I-heung
"남이흥 장군 묘 일원", 디지털당진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대표명칭 남이흥장군 묘 일원
영문명칭 Tombs of Nam Yu and Nam I-heung
한자 南以興將軍 墓 一圓
주소 충청남도 당진시 대호지면 도이리 374-2
지정번호 시도기념물 제52호
지정일 1984년 7월 2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수량/면적 3,776㎡
웹사이트 남이흥장군 묘 일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이곳은 조선중기 충절의 상징인 충장공 남이흥장군과 그의 부친인 의원부원군 남유장군의 묘소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남이흥은 1624년(인조 2)의 이괄의 난 진압에 기여한 곳으로 진무공신 1등에 올랐고 의춘군에 봉해졌으며, 정묘호란때 평안도 안주에서 후금의 침입을 막지 못하고 패하자 자결한 충절의 인물이다.

그의 부친인 남유 장군도 정유재란 당시 충무공 이순신을 도와 싸우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강직한 무인이다.

남이흥의 묘소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 탄리에 있었는데 1971년 성남단지 조성에 따라 이곳 충장사 옆으로 이장하였다. 이 때 부친의 묘와 부인의 묘도 함께 이장하여 하나의 가족 묘역을 형성하게 되었다. 묘역은 2단으로 윗단에는 남유의 묘와 남이흥의 묘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두 묘의 앞에는 동일하게 문인석 1쌍, 망주석 1쌍, 장명등 1기, 묘갈 및 묘표 등이 놓여 있다. 이 묘역은 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묘소 앞에는 사당인 충장사와 그 충성심을 기리는 남씨양세충신정려가 함께 조성되어 있다.

영문

Tombs of Nam Yu and Nam I-heung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무신인 남유(1552-1598), 아들인 남이흥(1576-1627), 그리고 그들의 부인들이 묻힌 묘이다. 왼쪽이 남유와 부인 전주유씨의 합장묘이고, 오른쪽이 남이흥과 부인 하동정씨의 합장묘이다.

남유는 1579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 당시의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에서 왜적에게 총을 맞고 전사하였다. 아버지가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남이흥은 글공부를 중단하고 무술을 익혀, 1602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1624년에 일어난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1624년 공신으로 책봉되었다. 1627년 후금이 침입하자 안주성(평안남도 안주시)에서 항전하였으나, 적군의 수에 밀려 성을 지키기 어렵게 되자 화약고에 불을 질러 자결하였다.

조선의 왕 인조(재위 1623-1649)는 남이흥의 충절을 기려 1627년 영의정에 추증하였다. 장례식 때 왕이 입고 있던 옷을 장군의 관에 덮어주었다고 하며, 그 옷이 현재 충장사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남유와 남이흥의 묘소는 원래 경기도 성남에 있었으나, 도시개발에 따라 1971년 현재 위치인 충장사 옆으로 이장하였다. 이장 당시 남이흥 장군의 영정, 교지, 관복 등의 유물이 출토되어 국가민속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